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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하나님이 세우신 최초의 신앙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보시기에 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으셨다고 한 것이다. 가정만큼 아름다운 공동체가 어디있겠습니까?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루고, 그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나고, 그렇게 이루어진 가정은 아주 적은 수의 공동체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가정 안에서는 모든 것을 다 함께 합니다. 모든 것을 다 내어줍니다. 모든 사랑과 정성을 다 쏟습니다. 가정 안에서 사랑을 먹고,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베풉니다. 전적으로 상대방을 위하여 헌신합니다. 여기에 사랑이 있고, 헌신과 수고, 땀과 피가 있습니다. 아름다움과 조화, 용기와 격려, 용서와 신뢰, 징계와 규율, 믿음과 성장, 사랑과 복종이 있습니다. 자녀가 태어나고, 청소년이 되고, 장년이 되어 결혼을 해서 또 하나의 가정을 세워갑니다. 모든 젊은이들은 결혼을 동경하고 사모하고 원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것은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가정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가정을 지키는 일이 매우 힘들게 되어 갑니다. 아니 그냥 가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가정답게 세워가는 일이 너무도 힘듭니다. 자녀들은 탈선하고, 부부 사이는 사랑과 신뢰가 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문제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말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무엇이 문제입니까? 무엇이 이 시대의 가정을 흔들고 있는 것입니까? 왜 많은 사람들은 가정 안에서 평안과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성경적 가치관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성경적 가치관이 세상의 풍조와 문화와 시대적 상황 앞에서 맥을 못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가정이라는 이 아름다운 축복의 동산을 전혀 지켜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적 가치관이 무엇입니까? 두 가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에베소서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 먼저 성경적 가정관을 보려고 합니다.

1. 첫 번째 가정에 대한 성경적인 가치관은 복종과 사랑ŸQ 세워지는 가정입니다.

에베소서 5장 말씀을 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 시대는 이 말씀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잘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은근슬적 피해가곤 합니다. 그리고 굳이 대면하게 되면 이 말씀은 그 시대의 한계 때문에 이렇게 기록되었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우리가 성경을 시대적 한계 안에서 쓰여졌다고 하는 순간 그 말씀은 더 이상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 때부터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성경을 이용하는 것이지, 성경 말씀을 듣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성경을 잘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 성경의 배경이나 당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시대적 한계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말씀을 제한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부분은 성경이 쓰여진 시대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 시대를 미개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가부장적 시대였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억압과 압제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던 시대라고 치부합니다. 그래서 그 시대는 가정에 대해서도 시대적 한계 때문에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성경이 쓰여졌던 시대에는 오늘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지닌 시대였습니다. 그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과 인생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시대에 대한 통전적, 통합적 가치관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시대 전체를 하나로, 함께 보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한 인간이 어린아이로 태어날 때 그는 부모, 형제, 지역, 교회, 국가, 민족과 같은 관계 속에서 태어납니다.

결혼은 한 가정을 세워가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단순한 개인과 개인과의 만남만이 아니었습니다. 결혼은 양가 가정이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결혼은 사회적 문화적 흐름을 이어가고, 생명을 이어가는 매우 중요한 통로이기도 했습니다. 결혼은 서로를 향한 확실한 신뢰와 사랑의 관계로 세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평생가약을 맺은 관계입니다. 검은 머리가 팥뿌리가 되도록 서로 사랑하며 서로 함께 하겠노라는 약속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더욱이 성경은 이 결혼 안에 하나님이 개입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19:4-6)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뤄주신 것을 너희들끼리 서로 감정상한다고,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성격이 다르다고 갈라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혼은 우리끼리의 결정일 수 없고, 우리끼리의 만남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개입하셨습니다. 그리고 양가 가문의 만남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세태는 결혼을 양가 가정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거부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 시대에는 있습니다. 사랑하는 젊은 남녀의 만남이 양가의 지위와 위신, 사회적 위치 등에 의해 짝지워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분명 옳은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혼이 우리들만의 만남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먼저 거부하십니다.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복종과 사랑의 문제가 나옵니다. 성경은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당시 시대적 사고에서만 가능한 이해였을런지 모릅니다.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몸의 원리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머리는 대개 어떤 일을 판단하고 지시하는 일을 합니다. 몸의 지체들은 머리의 지시를 받아 상황에 맞게 대처합니다. 여기서 명령과 순종, 지시와 복종은 한 사람의 생명에 있어서 매우 필수적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명령과 복종은 우월함과 열등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조금도 그런 의미는 없습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명령자와 복종자는 생명의 역동성에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이 양자의 관계는 서로 다른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만약 몸이 머리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지체장애가 되고, 머리가 제대로 명령을 내리지 못하면 정신장애가 됩니다. 그런 면에서 그것은 한 몸이고, 또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후 이 둘이 한 몸이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부는 한 몸입니다. 복종과 사랑은 한 몸 안에서 나타나는 삶의 방향이고 자세입니다. 부부가 한 몸이라는 사실을 실감나게 느끼고 고백할 수 없으면 우리는 이 말씀의 원리를 단 한 순간도 이해하거나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보다 남편이 어떻게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5;25)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이 말은 아내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라는 뜻입니다.
군중들이 예수를 죽이라고 소리칠 때 예수님은 아무 소리 안하고 그냥 십자가에 달려서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라고 기도하면서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시고 묵묵히 죽으셨던 것처럼 남편들에게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아내를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남편분들은 아내를 위해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가정이 행복하지 않을까요?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심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다면 가정은 행복할 것입니다. 그런 다짐들을 결혼할 때는 비록 멋모르고 하셨겠지만, 다들 하고 결혼했습니다. 고통이나 죽음도 갈라놓지 못할 사랑을 하겠다고 서약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아내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엡5:22-24)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오늘날 아내들은 대체로 너무 강한 편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 말씀을 듣고 마음에 거슬리는 사람은 깊이 부부 사이를 점검해 보십시오.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제 생각도 아닙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굴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님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큰 불행입니다.


그러나 남편들은 주의하십시오. 절대로 이 말을 남편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됩니다. 이 말이 남편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런 말은 아내로 하여금 진심으로 남편에게 복종할 마음과 기회를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서로를 향해 진지해져야 합니다. 부부는 진한 농담도 하고, 아주 유치할만큼 서로를 향한 신뢰와 친밀함이 있어야 하지만, 또한 상대방의 마음과 느낌과 정서에 대해 예민하게 느끼고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체로 남자들은 이 점에 있어서 너무 약한 편입니다.

주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아셨습니다. 주님 앞에 나오면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열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적어도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조심스럽게 잘 열고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가야 합니다.

성도의 가정, 성도의 부부는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행복은 바로 말씀을 바르게 이해함으로부터 옵니다. 생각이 바뀌는 것이 먼저입니다. 마음과 삶의 방향이 말씀이 가르쳐주는 방향으로 방향을 뜰어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참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 은혜가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2. 두 번째 가정에 대한 성경적인 가치관은 언약의 상속자로서의 가정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장면입니다. 이 결혼 장면에서 주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믿음의 상속입니다. 언약의 상속자로서의 결혼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부르셔서 언약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와 네 후손을 통해 바다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이삭을 주셨습니다. 이제 사라는 죽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 아브라함은 이삭을 위해 배필을 구합니다.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삭은 리브가가 도착하자 자기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이삭은 큰 위로를 얻고, 리브가를 사랑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부분은 리브가를 사라의 장막으로 들였다는 장면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리브가는 시어머니 사라의 언약을 이어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90세에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하시리라는 축복의 약속을 따라 주신 아들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은 이제 이삭과 리브가를 통해 상속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24장은 엘리에셀 종이 주인 아브라함에 의해 밧단아람으로 보내지는 장면으로 시작해습니다. 그런데 돌아올 때는 엘리에셀 종이 리브가에게 이삭을 주인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은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에게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즉 그들은 부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상속받습니다. 그들이 받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언약의 상속입니다. 언약의 상속자로서, 언약의 상속이 이어지는 통로로서 가정이 세워집니다. 즉 그들은 가정을 하나님의 언약 성취의 도구로, 통로로 이해했습니다.

가정이 무엇입니가? 가정은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통로입니다. 가정이 축복의 요람입니다. 가정은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가장 소중하고 신성불가침한 영역입니다. 우리 가정은 자녀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곳입니다. 가장 많은 대화가 있어야 하고, 가장 open 된 곳이어야 하고, 가장 사랑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자녀는 부모의 신앙을 유산으로 받고, 자녀는 부모의 신앙을 유산으로 받고, 부모의 기도를 받고 자랍니다. 기도 없는 가정이라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식탁에 앉을 때 자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자녀의 마음 속에 깊이 남는 축복이 되겠습니까?

이삭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63절을 보면 이삭은 리브가가 올 때 들에서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용한 시간, 정기적으로 나가서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께서 주실 유업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의 삶 가운데 개입하셨고, 역사하셨습니다. 이삭은 은혜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셨듯이 그렇게 남편은 아내를 사랑할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둘째는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그렇게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셋째는 가정을 하나님의 언약이 상속되는 곳으로 삼아, 기도와 말씀 안에서 부모님의 신앙을 유산으로 받고, 자녀들에게 신앙을 상속할 수 있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가정이 모두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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