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샬롯츠빌한인교회

주일설교

조회 수 4371 추천 수 29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본문은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예레미아의 5개의 고백록 중 첫 번째 것입니다. 그의 고백록에서 그는 자신의 내면의 깊은 갈등과 아픔 등을 쏟아냅니다. 예레미야는 선지자로의 부름을 받고 자기 민족 예루살렘과 남 유다를 행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의 죄를 고발하고 책망했습니다. 그것은 자기 민족을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예레미야를 미워하고 싫어했습니다. 그는 외로운 길을 가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젊은, 아니 어린 선지자에게 민족을 상대하여 말씀을 선포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가 40년 동안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감당하는 동안 그는 거의 혼자 그 일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었습니다.

믿음의 길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이제부터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분의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고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내가 너를 붙들리라.’약속하시고, 격려하시고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당신의 자녀와 함께 하시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당신의 자녀가 의지할만한 모든 것을 다 걷어 가시곤 합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고 경험하도록, 그래서 하나님을 추상적인 느낌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실체로 경험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가 의지할만한 모든 것을 다 걷어가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모든 것이 잘 된다는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시고 함께 해 주신다는 면에서는 맞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공급하시는 것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다른 공급원들을 차단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정말 하나님께서 내 삶에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시는 분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8장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말씀합니다. 출애굽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를 몰아넣으시고, 씨를 뿌려 농사할 수 없는 곳에서 40년을 지내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그들의 생명이 땅의 소산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철저히 경험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공급원을 차단한 채 오직 하나님만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만을 누리며 살게 하십니다. 그리고 오직 가야할 삶의 바른 목적에 집중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사실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이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이것은 정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를 누리며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오랜 하나님의 훈련을 통해 이 은혜를 맛보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누리는 은혜를 맛보게 하시기 위해 우리로 하여금 광야로 몰아가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십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을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세 결국 하나님을 찬양하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그렇게 훈련시키십니다. 그가 가장 의지하던 사람들을 떨어뜨립니다. 예레미야가 가장 의지하던 사람들은 바로 아나돗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레미야를 배신합니다. 예레미야 1장 1절에서 보았듯이 예레미야는 아나돗 출신의 사람입니다. 아나돗에서 제사장 아비아달, 더 나아가서는 아히멜렉의 후손입니다. 아나돗 사람들은 대부분 신실한 제사장 가문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런 분위기에서 자랐고,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도 바로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레미야를 배신합니다. 그들의 배신은 철저했습니다.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로부터 완전히 돌아섰고, 결국 예레미야를 죽이기로 작정했습니다. 아나돗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정신적인 고향이며 안식처입니다. 아나돗 사람들은 그가 자라면서 함께 했던 믿음의 선배들이고, 친구들이고, 후배드립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레미야의 선포를 못마땅해 하면서 그를 죽이고자 작정합니다. 예레미야는 의지할 자를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더 이상 의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하나님께 항의합니다. 12장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그분은 분명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늘 그렇게 일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는 주와 변론할 때, 따질 때, 혹은 말씀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 그는 주님의 의로우심에 대해 항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항상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하나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제 말좀 들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렇게 공평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신데, 왜 악한 자의 길은 여전히 형통하며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들은 왜 저토록 평안하고 잘 되는 것입니까?’예레미야의 질문은 매우 심각하고 또한 공격적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있지 못하신다고 힐책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입니까?’

2절을 보면 하나님을 향한 분노는 한층 더 올라갑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을 심으셨으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며 열매를 맺었습니다.’ 저들이 저렇게 잘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저들을 징계하지 않으시기 때문이 아닙니까? 저들이 죄를 지으면서도 잘 되는데, 저들이 뭐하러 진리를 따르며, 정직을 일삼으며, 공의로운 삶을 살려고 힘쓰겠습니까? 그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책임 아닙니까? 저들을 그대로 놔둔다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말씀을 전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만 거짓말장이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어린 예레미야는 사지로 몰아서 당신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는 뒤에서 지원도 안하시는 주님의 모습에 대해 몹시 안타까워하는 예레미야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직무유기를 고발하고 항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저들이 저렇게 그냥 놔두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항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렇게 할 수는 없을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계신다면 일어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지금 예레미야와 그 시대 백성들이 함께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아니 사실 예레미야에게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말씀을 전했지만, 그것이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같은 느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 것입니까? 정말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도 하나님은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입니까? 수많은 경제원리와 사회이론들이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고백하기에 오늘날은 너무나도 하나님을 낯설게 느낄 수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런 기도를 드려보셨습니까? 이만큼 처절하게 하나님을 향해 기도해 보셨습니까? 정말 이렇게 하나님을 향해 따져보셨습니까? 사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깊이 던지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하나님께 감히 질문을 하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질문을 하면 그렇게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질문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시는 것이 놀랍습니다. 전혀 의외의 답변을 주셨습니다. 5절을 봅니다.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려느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들에게 그들의 멸망을 선언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는 것, 그리고 아나돗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것을 하나님은 마치 예레미야가 보행자와 함께 경주하는 것으로 비유합니다. 예레미야는 지금 그 경주에 지쳤습니다. 그 경주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나돗 사람들을 예레미야가 태어난 곳이고, 정신적, 영적 고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그들의 살해 음모를 피해다녀야 하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항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왜 나만 일을 시키시고, 당신은 일을 하지 않으시냐’고 항의하고, 따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보행자와 경주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말과 경주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게 하시고는 그가 유다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것을 지켜보셨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의 인내와 용기, 확신과 담대함을 신실함으로 끝까지 드러내는 것을 보기 원하셨습니다. 마치 욥의 고난을 보시면서 사단 앞에 자랑스러워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사울왕에게 쫓기면서도 자신의 신실함을 지켰던 다윗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 성품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룹니다. 이것이 바로 말과 경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들뿐만 아니라 곧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바벨론의 공격 앞에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예레미야 자신의 일이 아니라 예레미야 자신이 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일을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이고, 또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나돗 사람들은 심판하고 멸망하시는 것보다는 먼저 예레미야를 통해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바로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정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약한 예레미야를 통해 하니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고, 의도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흔히 믿음이란 우리가 할 일을 하나님께서 대신 해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할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동안 우리는 평안을 누리고 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평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종으로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음으로 우리의 일이 아닌, 우리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이 아닌, 하나님을 일을 하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정도의 일을 감당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수없이 그런 사건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요셉은 히브리인으로서 애굽에 종으로 내려가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애굽을 7년 간의 가뭄에서 구원했고, 자기 부모의 자손들을 모두 구원했습니다. 기드온은 겁쟁이라 할만큼 소심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기드온 용사 300명으로 미디안을 공격하고, 7년 동안 압제 가운데 있었던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드보라는 여선지자로서 바락이라는 장군을 앞세워서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가나안 왕 야빈을 물리쳤습니다. 룻은 영원히 이스라엘에 합류할 수 없는 모압 민족의 여자였지만, 그의 신실함을 통해 다윗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에스더는 이방 여인으로서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의 부인이 되어 위기 가운데 처한 유다 인들을 구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사람을 택하셔서 이 땅에서 당신의 역사를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지금 그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갈 이스라엘 백성들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유다가 멸망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안계신 것은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섬길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열심히 연구하고 묵상하고 순종함으로 장치 올 메시야 왕국을 준비하는 일에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을 통해 그 일을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보행자와 경주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말과 함께 경주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을 통해 그런 일을 분명히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일을 지금도 소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믿음을 삶의 편리를 위한 방편으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보행자와 경주할뿐만 아니라, 말과 경주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십니다. 성도는 보행자와 경주하는 존재가 이닙니다. 성도는 말과 경주할 자들입니다. 너무 편안함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힘들여 예수를 믿으십시오. 힘들여 기도하고, 힘써 말씀을 보고, 힘써 섬기고 복음을 전하십니다. 남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기보다는 자신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더 초점을 맞추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말과 경주하는 자로 세우실 것을 기대하면서 더욱 은혜 가운데 거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1. No Image

    아들을 통하여(히1:1-3), 2010. 9. 12 주일예배

    Read More
  2. No Image

    결박을 푸는 금식(마6:16-18) 2010. 9. 5 주일예배

    Read More
  3. No Image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6:5-15) 2010. 8. 29 주일예배

    Read More
  4. No Image

    하나님이 갚으시는 구제(마6:1-4) 2010. 8. 22 주일예배

    Read More
  5. No Image

    기도의 특권(요16:23-33) 2010. 8. 15 주일예배

    Read More
  6. No Image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16:16-24) 2010. 8. 8 주일예배

    Read More
  7. No Image

    진리의 성령 (요16:5-15) 2010. 8. 1 주일예배

    Read More
  8. No Image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요15:18-16:4) 2010. 7. 25 주일설교

    Read More
  9. No Image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5:1-9) 2010. 7. 18 주일예배(권오국목사)

    Read More
  10. No Image

    내가 너희를 택하였노라(요15:12-17) 2010. 7. 11 주일에배

    Read More
  11. No Image

    나의 평안을 주노라(요14:27-31) 2010. 7. 4 주일예배

    Read More
  12. No Image

    보혜사이며 진리이신 성령(요14:16-24) 2010. 6. 27 주일예배

    Read More
  13. No Image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요14:12-15) 2010. 6. 20 주일예배

    Read More
  14. No Image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요14:7-12) 2010. 6. 13 주일예배

    Read More
  15. No Image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요14:1-7) 2010. 6. 6 주일예배

    Read More
  16. No Image

    포로민에게 보내는 편지 (렘29:1-14) 2010. 5. 23 주일예배

    Read More
  17. No Image

    언약의 통로인 가정(창24:61-67, 엡5:22-28) 2010. 5. 9 주일예배

    Read More
  18. No Image

    말과 경주하는 선지자(렘11:18-12:6) 2010. 4. 11 주일예배

    Read More
  19. No Image

    열방의 선지자 (렘1:1-10) 2010. 4. 11 주일예배

    Read More
  20. No Image

    부활하신 그리스도(요20:11-18) 2010. 4. 4 주일예배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 41 Next
/ 4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