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은 모두 알고 있었다. 소그룹리더의 자리가 얼마나 힘든 자리인지를 말이다. 이 친구는 지난 학기 소그룹리더로 섬겼다. 나는 이 친구가 어떤 리더 보다 열심히 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힘든 지도 잘 안다. 이 친구가 다시 말했다. "우리가 섬길 수 있는 건 많지 않나요? 다른 분야에서 섬기면 안되나요?" 사실 이 친구는 다른 분야에서도 섬겼던 친구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00야, 어떤 일을 할지/말지 선택할 때에는, 내가 원하는 일과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이럴 때에는 많은 경우,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옳을 때가 많다. 왜냐하면 그것이 더 힘든 ‘좁은 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보통 아이들이라면 나는 여기까지 한다. 더 이상 난 요구하지 않는다. 못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그럼 더는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난 이 친구에게 소그룹리더로 섬겨줄 것을 한 번 더 요구했다. 왜냐하면, 이 친구는 내가 진정으로 아끼는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옳은 길 걷기를 바랬다. 나는 안다. 무엇이 옳은지를, 무엇이 필요한지를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예수님이 요구하는 걸 하는 사람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할지/말지는 나를 기준으로 판단되어서는 안된다. 궁극적으로 나에게 유익이 되고, 나를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이 유익이 되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이 문제는, 할까/말까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이 단지 순종의 문제일 뿐이었다.
- 한희선 목사 (청년1부 담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