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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츠빌한인교회

자유게시판

2008.12.24 14:11

또 하나의 ‘시작’

조회 수 5982 추천 수 17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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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시작’


2년전 이맘때 나는 샬롯츠빌 호울푸드(Whole Foods) 앞 주차 마당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강고하고 완악한 자아(自我)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미국 땅에 처음 방문했는데 도착할 때부터 몸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서울에서의 과로와 장시간의 여행 등의 고단한 일정으로 입 안이 온통 헐어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
새로운 환경이 주는 긴장이 더해져 체력이 거의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첫날 하루는 거의 잠만 잤는데, 새벽에 소변이 빨갛게 물든 걸 보고 기겁을 했고, 다음 날 아침 한인의사가 있는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아 먹었다.
그리고 바로 호울푸드에 들렀다가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아내는 장을 보러 가게에 들어갔고 나는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히고 답답해지는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무슨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다.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사람들 눈에 띌 거라는 생각으로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한 발 두 발... 순간 하늘이 비잉 돌면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고는 약 9일간 거의 침대에 누워서 나의 첫 미국방문을 끝냈다.
외출은 거의 생각도 못했다.
다만 아내를 따라 교회에는 출석을 했다.
‘빛과 소금 교회’에 후배 목사가 있어서 그곳까지 포함하여
성탄절, 수요예배, 송구영신예배, 주일예배 등 다섯 번 교회에 갔으니 이틀에 한 번꼴로 교회만 나간 셈이다.

샬롯츠빌한인교회 처음 출석하는 날이었을 것이다.
찬양을 따라 하는데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참으려고 해도 자꾸 눈물이 났다.
나이든 남자가 이게 뭔가 싶어 창피했지만 내가 나를 어찌할 수 없었다.

이렇게 눈물이 터진 이후로 서울에 돌아와서도 거의 매주 예배시간에 울었다.
왜 그렇게 울었는지 잘 모르겠다.
찬양만 하면 가사가 마음의 깊은 곳을 건드린다.
어 자꾸 울면 안되는데... 잠시 참아보지만 이미 내 의지로 어쩔 수 없었다.
성경공부 하면서 예수에 대하여 말하다가, 내 삶에 대하여 얘기하다가 또 눈물이 쏟아진다.
연신 옷소매로 닦다가 언제부턴가 아주 손수건을 준비해 가야 했다.

올해 2월말에 미국에 다시 왔을 때도 교회에서 찬양시간만 되면 눈물이 나왔다.
매번 이젠 그만 울자 결심을 하고 간다. 가는 동안에는 기분이 명랑하고 차분하다.
그러나 찬양시간이 되면 여지없이 또 우는 것이다.
아내가 ‘당신 우는 거 한번 보는 게 소원이다’고 말할 정도로 강하던 내가
이게 무슨 꼴인지...
나이 들면 남자에게도 여성 호르몬이 많이 분비된다는데 그래서 그런가...

울고 또 울면서 나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내가 오랫동안 거부하고 외면하고 이제 거의 잊어버렸는데도 하느님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시는구나.
아 하느님께서 따뜻한 품으로 나를 부르시는구나.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것을 그 오랜 세월동안 왜 그렇게 완강히 거부하고 대항했는지...
왜 그렇게 황량한 곳에서 혼자 악을 쓰며 살았던가.
하느님의 품 안이 이렇게 포근하고 편안한데...

무한히 사랑하시는 하느님
한없이 은혜로우신 하느님
하느님 하고 부르면서 눈물이 났고, 예수님 하고 부르면 또 눈물이 났다.

이제 나를 놓아 버리자.  
내 지식과 의지와 속된 야망을 다 비워버리자.
하느님께서 다시 채우시도록 그냥 다 비워버리자.

죽은 줄 알았던 나무 등걸에서 새 싹이 나듯
내 영혼이 조금씩 소생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자아의 두꺼운 껍질이 녹아내리고, 영혼의 부드러운 속살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듯했다.

그 사건 이후 지금까지 나는 깊은 내면의 싸움을 겪어온 것 같다.
그것은 마음의 중심이 세속적 가치관에서 하느님의 뜻으로 옮겨오는 힘든 과정이었고
어둠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빛이 조금씩 어둠을 몰아내어 주도권을 탈환하는 과정이었다고 느껴진다.

엄밀히 말하면 변화는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던 듯하다.
아내와 아이들을 미국에 보내고 기러기 신세가 된 후 혼자 생활하면서 강고한 자아의 한 구석에서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1년쯤 지났을 때, 아내에게 한 약속대로 교회를 다시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거의 15년 만에 성경을 다시 읽고 찬송을 다시 불렀다.
속세의 때가 잔뜩 묻어 누추한 마음상태에서 어딘지 부끄럽고 두려운 심정으로 처음 교회에 가 앉아있던 때가 생각난다.
이방인처럼 마음이 위축되고 모든 게 낯설었다.
젊은 시절 예수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삶의 전부를 헌신하려 애쓰던 내가...

그러던 중에 조금씩 약해지고 있던 나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린 것이 호울푸드 사건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난 이제 예수에게 굴복했다고 말하곤 한다.
더는 대항할 수 없어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
나의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싶다.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을 받던 시기에 나는 사업의 첫 실패를 맛보았다.
크레인으로 간판을 내리던 날이었던가... 쳐들어온 채권자들을 상대하고 나서 나는 속으로 하느님께 말했다.
“어디 끝까지 짓밟아봐라!”
하느님 도움 없이도 내 능력으로 성공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이정도밖에 안 되나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더 철저히 현실을 배우고 그 논리에 복종하려 했다.
그래서 어느덧 나도 마음이 독해지고 두꺼워져 내가 원하던 통속적이고 실리적인 사람이 되었다.
대분의 세상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도 자주
돈 앞에 굴종하고 한 줌의 이익을 위해 인격과 양심, 도덕과 영혼을 팔았다.
그런데 그만 도중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이제 나는 나의 약함, 나의 실패를 편안히 말할 수 있다.
인생 실패가 무슨 자랑이 아니고 그냥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자랑스럽겠는가.
심히 부끄럽지만 마음이 편하다.
이제는 삶의 목표가 없다. 자유롭다.
나는 수시로 ‘네 주제를 알아라’고 자신에게 말하곤 한다.
앞으로 언제까지나 인생의 패배자임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동안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어머니, 아내,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사람들 중에서도...
샬롯츠빌 교회에 와 보니 여기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유장로님, 유권사님, 구역모임 구성원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 왔구나.
그 기도에 하느님께서 결국 응답하신 것을 알 것 같았다.

나를 살리신 하느님
일그러진 자아를 고치시고
나보다 더 아파하시고 기다려주신 하느님
나를 그대로 이해하시고 받아주시는 하느님
다시 가능하리라 꿈도 꾸지 못했던
새로운 시작을 시도하는 용기를 주시고
나를 스스로 돌아보게 하시고
부끄럽고 혼탁한 마음을 씻어 아름다운 마음으로 가꾸게 하시는 하느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아멘!

약 2년 동안 나는 깊은 치유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건강과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 하나하나에서 하느님의 은혜를 체험했고 이 모든 게 내게는 기적처럼 느껴진다.
2009년 나는 이제 다시 세상에 도전하려고 한다.
내 판단과 의욕이 먼저가 아니고 하느님의 뜻을 먼저 알려고 애쓸 것이다.
나와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며
내가 받은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삶에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활동을 알기 위해서도 노력할 것이다.
내 가족을 책임지고, 이 사회에서 선량한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행하며 살고 싶다.
겁이 나면 더 기도하여 용기를 구할 것이고, 세상을 가볍게 보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다.
생활현장에서 정직하고 정의롭게 행동하고, 인권과 양심이 존중받고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한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하느님은
나의 약함을 잘 아십니다.
나의 기질과 잘못 길들여진 습관과 아직도 순화되지 못한 편협을 잘 아십니다.
내 안에서 떠나지 마옵소서.
내 욕망을 버리는 노력을 멈추지 않게 해 주시고
세상의 삶이 나에게 거짓과 이기주의를 강요하더라도
아주 조금씩이라도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은 피하게 해 주시고
하는 일에 또 좌절하더라도 참으로 소중한 것을 스스로 놓치는 어리석은 잘못을
다시는 범하지 않도록
위기의 순간에 저에게 찾아와 위로와 희망을 주시옵소서.
일상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여
내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축하하며
이로 인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지금도 호울푸드 앞을 지나갈 때는 차들이 주차된 그 마당에 눈길이 간다.
내 인생에 또 하나의 ‘시작’이 있었던 곳.
그곳이 나에게는 두고 두고 되새기고 싶은 거룩한 장소일지도 모른다.

2008. 12. 23. 샬롯츠빌에서 김민수.
  • 최영훈 2008.12.24 21:13
    귀한 나눔 감사드립니다. 글을 읽으면서 저에게도 간직되어있는 또 하나의 "시작" 을 가져다준 "그 곳" 을 회상해보았습니다. 어느 교회의 조그만 다락방...
  • 김용일 2008.12.28 06:29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한 "소중한" 간증입니다. 고마워요, 이렇게 같이 나눌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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