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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츠빌한인교회

자유게시판

2008.05.07 00:40

상과 하

조회 수 6228 추천 수 27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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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上)과 하(下)
2008. 4. 21. 샬롯츠빌에서. 김민수

미국에 아내와 아이들이 사는 집은 2층 목조건물이다.
아래층엔 거실과 주방, 그리고 안방이 있고, 2층에는 아이들이 쓰는 두 개의 방이 있다.
좀 살아보니까 2층집은 묘한 재미가 있는데 그건 아마도 상하로 공간 배치가 된다는 점, 즉 위와 아래의 공간 간의 관계가 주는 어떤 묘미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가족 공동의 공간으로 거실과 주방이 있지만 사실상 가족이 거실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는 이 공간을 좀더 잘 활용하는 방안이 없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우리 부부는 주로 거실과 안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에 대하여 얘기할 일이 있으면 안방으로 들어가 조용조용 얘기한다. 때로는 깊은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 번은 밤늦게까지 얘기를 하다가 “제발 조용히 좀 해주실래요? 도대체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하는 해인이의 정식항의를 듣고 죄지은 사람들처럼 속닥거리면서 마무리하고 곧 잠을 청한 적도 있다.

아내는 그동안 아래층 거실이나 안방에서 아이들을 위해 수없이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고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나는 이제야 조금 시간을 들여 아이들을 걱정하고 연구하고 때로는 무력감에 빠져서 반성하고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고 있다.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아주 늦어버린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희망을 갖는다.

어느날 새벽 거실 소파에서 아이들에 대해서 기도하고 이런 저런 문제를 묵상하다가 문득 위에 아이들이 있는 것이 마치 상전을 모시며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을 상전(上典)으로 모시는 하인(下人)이 아닐까? 정말 2층은 우리가 모시는 분들이 있는 곳이다. 늘 그곳의 일에 신경이 쏠려 있고 그곳의 부름에 응하기 위해 대기상태로 산다. 지금 그분들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를 궁금해하고 요모조모 상상해보곤 한다.

나는 처음에 여기 와서 2층 아이들 방을 불쑥 불쑥 들어갔다가 해인이에게 “나가 주시면 안 돼요?” 등의 단정한 요구를 몇 번 듣고 나서는 아이들 방에 들어가려면 꼭 노크를 하거나 문이 열려 있을 때는 어정쩡하게 문밖에 서서 말하곤 한다. 진형이 방은 사내 방이라 그런지 조금은 덜 긴장되지만 그래도 용건 없이 그냥 들어가 보진 못한다.
어떤 때는 2층에 올라가 볼 구실을 만들어 보려고 일부러 과일을 깎아 들고 가 보기도 했고, 아이들 책을 가져 왔다가 필요한 시점을 잡아 다시 돌려주는 척하면서 방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초보자이지만 아내는 수준이 다르다.
어떤 때는 아내가 2층에 가 보지도 않고
“해인아 컴퓨터 그만 해라.” 한다.
“내가 언제 했다고 그래”
웃음 섞인 말투로 보아 딱 잡힌 모양이다.
그냥 때려 잡는 게 아니라 감으로 아는 거다.
가보지 않고도 2층의 상황을 대강 짚어내는 아내의 투시력이 정말 존경스럽다.

“해인아 어서 일어나.”
“나 안 자.”
“빨리 일어나라.”
“일어났어. 왜 그래?”
“근데 왜 목소리가 아직 촉촉해?”
이렇게 위 아래를 오고가는 두 모녀의 대화를 듣다보면 무슨 고승과의 선문답 같다.

한번은 주방에서 아내가 “사과 할래요, 멜론 할래요?”하고 나에게 물었다.
갑자기 2층에서 “사과요!” 한다.
바로 옆에서 내게 작은 소리로 물은 건데 그걸 해인이가 2층 자기 방에서 듣고는 끼어든 거다. 나는 그 상황이 재미있어서 한참 웃었다.
해인이는 이렇게 종종 아래층 대화에 끼어든다. 그 귀가 항상 아래층을 향해 열려있는 듯하다. 가끔 위에서 깩 하고 소리치는 해인이의 목소리를 듣는 게 내 큰 즐거움 중 하나다.
하지만 진형이는 아래층 일에 거의 끼어들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하는 일에 잘 집중하기 때문이다. 혹시 아래에서 무슨 큰 소리가 들려도 어지간해서는 즉각 반응하지 않는다.
타인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해인이와 집중력이 좋은 진형이, 이렇게 두 아이가 아주 다르다.  

나는 위에서 가끔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리를
천상의 소리로 듣는다.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끼어드는 해인이의 말, 진형이의 아주 가끔 부스럭거리는 소리.
이제 우리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이런 하인 노릇도 더 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니 지금의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 아이들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을 나는 감사히 생각한다.  

우리 집은 위와 아래 두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두 개의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중간에는 두 세계를 이어주는 계단이 있다.
2층으로 가는 나무계단을 오를 때 쿵쿵하는 그 소리는 아이들을 향한 내 마음의 떨림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좋다. 더욱이 해인이가 통통통 하면서 내려올 때 그 소리는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 주병열목사 2008.05.07 06:24
    글 안에 삶의 모든 것이 다 담겨 있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자녀를 위해 내려앉은 모습, 그것이 주님의 모습인 듯합니다. 감동!!!! 감동!!! 입니다.
  • 양성식 2008.05.26 19:13
    너무나 가슴에 와닿는 글입니다. 전 꼬리말같은거 안하는 성격인데 감사의 말씀 드리려고 가입까지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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