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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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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설교는 지난 주일 설교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전합니다. 지난 주일 설교를 조금 반복하면서 오늘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0절입니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정사)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족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여기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천사와 마귀)와 눈에 보이는 세상의 권세 있는 자들(정치가, 통치자, 사상가들)을 의미합니다. 이 둘은 세상에 대한 실제적인 지배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지식과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10절은 하나님께서 교회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큰 소망과 용기를 주고, 또한 도전합니다.


십자가에 숨겨진 하나님의 비밀

영적인 세력인 악한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만 하면 하나님의 인간 구원 역사를 실패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예수를 죽이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십자가에서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죽이고 난 후 보니까 그 십자가가 곧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었고, 계획이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계획과 비밀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이런 비밀스런 당신의 계획을 알리십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끌고 나오면서 “모세는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모든 사람들이 돌을 놓고 돌아갔습니다. 예수께서 여인에게 물었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여자가 대답하기를 “주여 없나이다.”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에 흐르고 있는 두 가지 원리를 발견합니다. 하나는 모세의 율법적 원리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하였는데” 이 원리는 1000년 이상 유대 사회를 유지했던 율법적 원리였습니다. 간음한 남녀는 돌로 공개처형을 했고,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해야만 했습ㄴ디ㅏ. 이런 율법 규정은 당시 사회에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는데 상당히 유익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원리는 인간에게는 그가 지은 죄보다 그의 아픔을 이해하고 어루만지는 관용과 용서가 필요하다는, 상당히 휴머니스틱한 관점의 원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마도 이 여인이 어릴 때 어떤 상처가 있었고, 그런 상처가 그를 그렇게 탈선하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용서와 관용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의 상처를 보셨고, 그런 상처를 어루만지시고 용서하심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두 가지 원리는 이 사건 안에서 팽팽한 긴장 가운데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의 세상에도 이 두 가지 원리가 같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건 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이 무시되어도 된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여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와 동시에 이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사랑하고 용서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율법적 삶의 기준을 놓아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저절로 자연스럽게 그 여인이 스스로 죄에서 떠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분명하게 그 여인에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 것’을 기대하셨고 요구하셨습니다.


말씀의 원리화가 갖는 위험

여기서 우리가 쉽게 놓쳐버릴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원리화’시키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의 말씀을 하시면 사람은 그것을 하나의 원리로 만들어서 모든 상황에서 그것을 적용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을 위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심으로써, 용서의 길을 열어놓으셨지만, 제자들에게는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고, 또 마태복음 23장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는 “화 있을진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하면서 그들의 죄를 책망하시고, 그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원리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 만남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예수님 자신이 위기에 몰려가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 여인을 죽이는데 목적이 있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을 얻기 위해, 즉 예수님을 함정에 빠지게 하기 위해 이런 덫을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여인과 함께 지금 같은 위기의 운명에 휩쓸리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주님께서 자신을 위해 그런 위기로 몰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즉 여인과 예수님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상황에 놓이는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여기에 인격적 만남이 일어났습니다.


말씀의 원리화는 하나님의 주도권을 인간에게로 가져온다

말씀을 하나의 원리로 만들어 버리면 주도권을 하나님에게서 인간에게로 가져오게 됩니다. 기독교 신학에 이신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신론이란 시계공이 시계를 만들어 태엽을 감아놓고 스스로 시계가 가도록 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렇게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더 이상 세상에 관여하지 않고, 창조원리를 세상에 심어놓아서 그대로 움직이도록 한 것입니다. 인간은 단지 세상의 원리를 잘 익히고 터득해서 복을 얻게 됩니다. 그야말로 자연(自然, 스스로 그렇게 돌아가도록 만들어진 세계)을 말합니다. 하지만 신학자들은 ‘이신론은 무신론으로 가는 관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원리화하는 것은 하나님을 세상에서 추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추방당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계속적으로 세상에 개입하십니다. 예수님의 처녀 탄생, 홍해의 갈라짐, 반석에서 물이 나고,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는 등의 기적은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세상에 개입하심으로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시는 단적인 사건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에서 동물로 제사를 드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장래에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이루실 인간 구원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룩한 예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참된 회개가 없이 그냥 제물만 수없이 성전에 바쳤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더 이상 성전에 제물을 드리지 말라. 내가 기름 냄새에 지쳤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먼저 구원을 얻고 의롭다 함을 얻은 후에(롬3:24), 형제를 사랑하고 서로 우애하며 존경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롬12:10). 그러나 아무리 예배를 많이 드려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말씀의 원리화는 말씀을 자기 의를 세우는 수단으로 삼는다는데 가장 결정적인 문제를 갖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원리로 만들어서 우리의 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인격이신 주님 앞에 서는 체험이 필요합니다.


제자훈련 이야기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우리교회는 이번 학기 제자훈련을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늘까지 제자훈련 신청을 받습니다. 제자훈련을 처음 시작하면서 최소한 새신자반을 들은 분들 중에서 서리집사를 임명하고, 권사는 성숙자반을 들어야 하고, 안수집사와 장로가 되는 것은 사명자반까지 듣도록 하자는 방향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1년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2012년 임명 시에는 이를 적용하지 못했고, 2013년 올 해에는 심각하게 고민하며 논의를 했는데, 올해까지는 이 규정을 적용하는 것을 유보하면서, 단지 아직 새신자반을 듣지 못한 분들에게는 새신자반을 듣는 것을 조건부로 서리집사 임명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운영위원회를 하면서 어떤 분이 서리집사를 임명하는데 왜 만들어 놓은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지에 대해 질문을 해 오면서, 이왕 규정을 만들어 놓았다면 그대로 지켰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저는 누가 그 제안을 했는지 확인하지 않았고, 또 선의로 그런 제안을 했음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제안에 함정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함정이란 바로 말씀을 원리화하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더 잘 훈련되어 교회와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교회들이 제자훈련을 하게 되면 제자훈련이 마치 교회 안에 계급장처럼 취급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무슨 자격을 부여받은 것처럼 자신들을 특별하게 여기는 현상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모든 성도님들이 제자훈련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제자훈련이 계급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자훈련을 받은 분들에게 직분을 맡기는 것은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건강하게 섬기기 위함이지, 그 안에 자격의 의미가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 제자훈련을 통해 자라갑니다. 새신자반을 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동일한 신앙적 수준(?)에 이르는 것은 아닙나다. 어떤 사람은 새신자반을 통해 비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 새신자반은 말씀과 신앙의 더 깊은 비밀을 깨닫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명자반을 두 번째 하면서 저 자신이 계속 자라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원하기는 모든 성도들이 제자훈련을 통해 자신의 신앙이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막상 제자훈련을 한 학기 했다고 해서 그렇게 신앙이 금방 자라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타까워하고, 한 번 더 하고 싶어하고, 또 그렇게 하는 분들도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간절한 마음을 갖는 것이 우리에게 더 필요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런 간절함과 사모함으로 자라가기를 원하십니다.


결론 및 적용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원리화하지 않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다음 두 가지를 권면하고 싶습니다.

첫째, 말씀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적용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말씀이 다른 사람에게 적용되는 순간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의 원리가 되어버립니다. 원리가 된 말씀은 상대방의 가슴이 상처를 남길 뿐, 그것이 그를 회복하고 새롭게 하지 못합니다. 말씀 앞에 무릎을 꿇읍시다.

둘째,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대면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핑계와 명분이 있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다른 어떤 핑계도 찾을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서 주님을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을 똑바로 보며,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 안에 참된 변화가 일어납니다.

거기서 우리는 시바가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길이 없음을 알고 주의 은혜를 고백할 때 그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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