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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절과 13절 말씀을 근거해서 고난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1절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바울은 감옥에서 에베소서를 쓰고 있습니다. 4장 1절에도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말씀했고, 6장 20절에도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이라고 말씀함으로써, 수감 중인 자신의 상황을 소개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쓴 13개의 서신 중에 5개나 감옥에서 썼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11장 23절 이하에 보면, 그가 겪은 수많은 고난에 대해 서술합니다. 옥에 갇히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주리고 목마르며 굶고 춥고 헐벗었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말씀합니다. 인간을 죄와 허물에서 구원하신 은혜, 이로 인해 이방인에게도 임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이방인과 유대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6절에서는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크고 놀라운 것이라면 사도 바울은 왜 그렇게 모진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일까요?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아마도 그렇게 질문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큰 것이라면 바울 당신은 왜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먼저 그 은혜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복음이 그렇게 귀한 것이라면 그 복음을 믿는 자에게 왜 고난이 계속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얻게 되는 구원과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삶의 고난이 이기서 서로 충돌합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데, 나는 예수를 믿어도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인가? 믿을 때 주신다는 삶의 회복을 기대합니다. 고난 없는 평탄한 삶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뭐 인생의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이렇게 힘든 인생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고난과 은혜의 관계

1절을 다시 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은혜l 사건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고난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된 삶을 주시기 원하시는데 왜 고난이 있어야 하는가? 이것은 그들의 고민이고 질문이었습니다.

이 둘 사이에 고난에 대한 개념이 달랐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고난이 없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었고,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고난이라는 값을 지불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난이라는 댓가를 지불하고라도 얻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고난에 대해 아주 긍정적으로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13절에,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말씀했고, 베드로전서 3장 14절에는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고난에 대한 두 가지 측면

성경은 고난과 은혜에 대해 두 가지 그림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믿을 때 모든 일들이 형통하는 그림입니다. 예를 들어, 모세가 홍해를 건너는 사건입니다. 여호수아가 요단 강을 건넜고, 엘리야가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과의 영적 대결에서 승리합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서 살아나왔고, 그의 세 친구가 풀무불 속에서 죽지 않고 나왔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두 배에 채울만큼 많은 고기를 잡았고, 기드온이 300명의 군사로 미디안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그 상황들을 보면 또 다른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것을 그려 보십시오. 홍해를 건넌 것은 정말 위대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홍해를 건너기까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은 상황은 어떠했을까요? 그 긴장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앞에 어마어마한 바다물과 뒤에서 애굽 군사들의 병거소리를 듣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아마도 왜만한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죽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게 뭡니까?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고 해서 믿고 나왔는데, 홍해 앞에서 전멸할 위기를 겪는 것입니다. 차라리 그냥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것이 더 낫지 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즉 엄청나 긴장과 위기의식을 겪은 후에야 하나님의 큰 기적의 은혜를 맛본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는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명령을 따라 금으로 만든 신상에 절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세 청년들은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풀무불에 던져질 운명이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살아 돌아왔지만, 그 상황에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었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그런데 그 상황에 직면하는 세 사람을 보십시오. 그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직면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홍해 앞에 서지 않고 누가 어떻게 홍해를 건너는 기적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뒤에서 애굽 군사가 처들어오지 않는데, 홍해가 갈라질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믿음을 지키려고 무슨 고난이라도 받겠다고 다짐하는 세 청년이 없었다면 하나님께서 뭐하러 그들을 풀무불에서 건질 이유가 있었겠습니까? 누가 기적을 바라겠습니까? 그냥 기적 없이 편하게 살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 시대는 여러 가지 이유로 기적이 없는 시대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기적이 일어날 상황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기적이 일어나야 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기적 없는 편안한 삶, 적당한 삶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 본문에서 말씀하는 고난의 의미도 충분히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고난 없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기적이 필요하지 않는 삶을 원하는 것입니다. 기적을 원하는 것은 단지 인생을 더 쉽고 편하게 살기 위한 방편으로서 원할 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난이라고 하는 댓가를 지불하고라도 얻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차이가 무엇일까요?

다니엘의 세 친구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만든 금신상에 절하기를 거절하고, 그 결과 엄청 뜨거운 풀무불에 던져졌습니다. 얼마나 긴장된 순간입니까? 기적이 왜 필요합니까? 만약 다니엘의 세 친구가 신상에 절했다면 그냥 편하게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무슨 배짱으로 신상에 절하지 않고 왕에게 맞서는 것입니까? 그런데 세 친구의 이런 믿음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맛보게 됩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왕이 세 친구를 높여서 존귀하게 했습니다(다니엘 3:28-30).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그냥 평범한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고난 없는 평범한 삶이 아니라, 고난을 통과한 존귀한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고난과 은혜의 관계는 서로 상쇄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은혜가 클수록 고난이 줄어들고, 고난이 많을수록 은혜가 줄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 클수록 하나님의 은혜도 크고 깊은 법입니다. 그래서 욥은 깊은 고난 속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 그런 면에서 번영신학은 함정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잘 된다는 말은 옳은 말이지만, 그것이 고난 없는 상태를 말한다면 그것은 함정이고 잘못된 말입니다.  본문은 고난에 대해 우리에게 중요한 두 가지 점을 말씀합니다.


첫째, 고난이라는 창을 통해 고난보다 훨씬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을 보라고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 갇힌 자 된 나 바울”이라는 1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라는 말을 언급합니다. 이 말은 6절에서 말씀하는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함께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바울은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의 일, 즉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유대인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상급의 상속자가 되게 하신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을 알지 못한채 고난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 고난을 감당하는 것이 너무도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광을 먼저 알고 경험해야 고난을 견딜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와 광야을 거쳐갈 때 가나안의 소망을 잃어버릴 때마다 그들은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소리쳤습니다. 그들이 가나안의 영광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그냥 살기도 무척 힘듭니다. 예수 안 믿어도 힘들고, 예수 믿으면 더 힘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보지 못하면 우리는 이 고난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그 놀라운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 진정한 은혜의 삶을 살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자녀는 더 큰 영광을 얻기 위해 고난을 자원합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고난 받기를 자원했습니다.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만났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아마도 이방인 전도로 인해 잡힐 것이고, 이러한 사실을 바울도,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가지 말라고 말류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길을 기어이 갑니다.

1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러므로 ~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같이 상속자의 반열에 서는 것이 너무도 귀하고 놀라워서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겪는 고난을 자원합니다. 자기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자기 생명보다 더 큰 사명을 마음에 품고 나아갑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고 말씀했고,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2:3)고 말씀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벧전2:9),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벧전4:13)고 말씀했습니다. 자원하는 고난은 성도의 삶을 가장 존귀하고 아름답게 합니다. 그 가장 좋은 모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선교지에 가서 선교하는 것은 여러 모로 힘들고 어려운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가는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올 여름에 단기선교로 가려고 계획하고 있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선교하는 김종성 선교사님을 지난 가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 있는 여러 사람들이 이 선교사님을 두고 동일하게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 선교사님을 우리 교회에 보내주셨다’는 말이었습니다. 선교는 너무도 외롭게 힘든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선교사님을 아주 높이고 존귀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잘 되고 모든 일이 형통한다고 듣고 믿어왔습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우리 인생에 고난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무관심과 버림받음의 사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귀하게, 더 큰 은혜를 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고난 없는 평탄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고난이라는 엄청난 값을 지불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인생의 문제로 인해 긴장하는 것을 열며하지 마십시오. 그 고난은 우리의 인생을 높이고 존귀하게 할 것입니다. 고난이라는 창을 통해 고난보다 훨씬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자 된 바울”을 보십시오. 그리고 더 큰 영광을 위해 고난 받기를 자원하십시오. 그렇게 고난 받기를 자원하는 자가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높이셔서 존귀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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