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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 9월 16일에 설교한 “교회의 비전1-건강한 교회”에 이어서, “교회의 비전2-함께 하는 공동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지난 9월에 한 설교에서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울 때 가진 목적으로, 교회의 존재를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의 존재 목적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같은 존재 목적을 가진 교회라도 그 교회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개 교회가 힘써야 할 부분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 2장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즉 에베소 교회는 주님께서 주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랑의 회복’이라는 점에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사랑의 회복’은 바로 에베소 교회의 비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우리교회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주보 4면에 세 개의 비전을 명시해 놓았습니다. 1. 건강한 교회, 2. 함께 하는 공동체, 3. 복음의 증인이 되는 성도입니다. 이 비전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어서, 첫 번째 비전의 성취가 두 번째 비전 성취를 가능하게 하고, 두 번째 비전 성취가 세 번째 비전의 성취를 가능하게 합니다.

오늘은 우리교회의 두 번째 비전인 ‘함께 하는 공동체’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제목은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공동체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쓰이는 말입니다. 교회도 하나의 공동체고, 때로는 소그룹, 즉 구역도 공동체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공동체’라는 말은 지역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인 삶을 영위할 때 활동하는 삶의 모든 영역을 의미합니다. 그런 면에서 지역 사회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도 이러한 지역 공동체와 아주 긴밀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본문 43절을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라는 말씀에서 ‘사람’은 믿는 사람들을 의미하지 않고, 당시 예루살렘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즉 당시 불신자들이 교회와 성도들을 두려워했다는 뜻있습니다. 또한 47절에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온 백성’도 역시 불신자를 의미합니다. 그런 면에서 초대교회는 지역 공동체와 매우 긴밀한 관계 안에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함께 하는 공동체의 의미

그렇다면 함께 하는 공동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기서 공동체의 개념을 세 가지로 살펴봄으로써, 우리교회에가 감당해야 할 ‘함께 하는 공동체’라는 비전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거리 개념

우선 이 공동체는 거리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역 사회를 의미하는 공동체는 우선 교회보다 넓은 개념입니다.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관심을 가집니다. 하지만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가면 사랑과 관심이 사라집니다. 또 한편으로 지역 공동체는 선교의 관심 대상인 타지역, 타민족, 열방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민족, 타국, 열방에 쏟는 복음적인 사랑과 관심을 이웃 공동체인 지역에는 가지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지역 공동체는 우리의 관심을 피해가는 영역입니다.

성경에도 이런 상황을 잘 표현해 주는 두 가지 예수님의 예화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잃은 아들을 되찾는 아들의 비유”입니다. 집 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 그의 형은 동생에게 아무런 관심도, 사랑도 주지 않습니다. 함께 동거동락했던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를 관심과 사랑의 영역에서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반면에 누가복음 10장에는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반 죽었는데, 이를 본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냥 지나갔지만, 사마리아 사람만이 그를 돌보고, 치료해 주고, 끝까지 책임을 졌습니다. 이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과 아무런 관계도 없지만, 이 사람을 자신의 최고 우선순위를 가진 관심과 사랑의 영역으로 끌어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이런 영역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의 범주가 있습니다. 그 범주 안에는 굳이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지 않아도 상관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역은 우리의 마음과 중심을 드려다 보게 하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영역은 교회와 성도가 영혼 구원을 위해 세계 선교로 눈을 뜰 때 거쳐가야 하는 매우 중요한 영역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전도를 하면서도, 그리고 전도 과정에서 유대인의 박해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자기 민족에게 복음 전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놓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서 9장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천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이것이 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본문 44-4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믿는 사람’들이 재산과 소유를 팔아 다른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움을 받는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리스도인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포함되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초대교회가 꼭 믿는 사람들, 그래서 교회에 등록한 사람들만을 골라서 도와주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인해 온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교회는 이 점에 있어 매우 약합니다. 교회의 건강에도 관심을 가지고, 세계 선교에도 열정을 갖지만, 지역 사회, 지역 공동체를 향한 사랑의 열정에는 그리 헌신적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많은 사역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샬롯츠빌만 보아도 노숙자 사역, 난민 사역, 교도소 사역 등 많은 사역을 하는 주변 교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왠지 뭔가 빠진 느낌을 갖게 됩니다. 자기 울타리를 치고, 자기 방어적인 사역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역에 대해 연구한 책들을 보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함께 하는 공동체’라는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첫 번째로 ‘지역 개념’을 볼 때, 우리에게는 무관심의 영역이 있습니다. 수없이 살면서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는 이웃들임에도 불구하고 신경 쓰지 않고, 관심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교회 안과 밖에 같이 있습니다. 굳이 내가 관심을 갖지 않아도 아무런 반응도 문제도 없다는 이유로 무관심한 영역은 마땅히 극복되어야 할 영역입니다.


2. 사역 개념

두 번째는 사역 개념입니다. 우리가 함께 사는 지역 공동체에 대해 어떻게 사역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를 보면, 이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보고, 주막에 데려다 주면서 치료를 부탁합니다.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으리라”(눅10:35). 그의 관심은 그를 섬기는 것까지 입니다. 물론 그 후로 그를 성전에 함께 데리고 가서 예배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나가지 않았습니다.

본문 45절을 보면,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라고 말씀합니다. 즉 초대교회가 그들을 섬길 때 그들은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돌아오는 것을 조건으로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나눠주었습니다.

우리교회는 이민 사회에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한국이나 타지에서 오는 분들을 도울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돕다 보면 기쁨을 얻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려움과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습니다. 열심히 도움을 받았지만, 와서 교회에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있다가, 돌아갈 때 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상처를 입습니다. 이렇게 상처를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서 섬기라고 하셨기에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시기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와 열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맡기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사도행전 6-7장을 보면, 스데반의 설교가 나옵니다. 그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열심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스데반은 이 한 번의 설교를 하고 순교 당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현장에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고, 후에 그가 주님을 만나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결정적인 영향이 바로 스데반의 설교에 있었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결과와 열매는 전적으로 주님의 손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자기의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영혼 구원은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알아서 하시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그렇게 맞아 죽으면서 복음을 전했고, 그 복음을 전하면서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변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즐긴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누린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이웃 섬김은 당연히 영혼 구원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책임도, 우리의 영역도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의 섬김 자체로 인해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종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라고 말한 한 종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교우들이 섬김 자체를 기뻐하고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섬김의 결과로부터 자유했으면 좋겠습니다. 스데반처럼 열심히 복음을 전한 후 열매가 당장 없어도 천사의 얼굴로 하나님 앞에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섬김의 마땅한 모습입니다. ‘함께 하는 공동체’라는 비전을 나누면서, 공동체를 섬길 때 주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귀한 것을 약속하셨지만, 우리는 그 섬김의 결과가 아니라 섬김 자체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할 수 있을 때, 참된 교회의 방향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3. 동기 개념

‘함께 하는 공동체’를 생각할 때 우리는 공동체를 섬기는 동기가 무엇인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가 지역 공동체를 섬길 때 우리는 교회를 활성화시킬 목적을 가지고 지역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습니다. 즉 지역 사회를 섬기면서 우리의 관심은 지역 사회 자체보다는 오히려 교회를 역동적으로 세워가려는 의도를 갖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의도를 배제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동기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아래서 이미 충분히 동기부여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지역 공동체를 섬기는 것은 이미 주신 은혜를 나누어주기 위함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지역 공동체를 섬기는 바른 동기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미 받은 사랑이 있기 때문에 나누어주려는 것이 바로 ‘함께 하는 공동체’ 섬김의 동기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 주신 이가 어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라고 말씀했습니다.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동기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세상 공동체를 섬길 때 그들이 어떠냐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이용하든, 그들이 우리의 사랑과 섬김을 받을 가치가 있든, 없든, 그들이 우리의 섬김에 대해 반응을 하든 안 하든,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사랑을 그들에게 다시 나눠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데반의 복음 전파가 가능한 것이었으며, 선한 사마리아 인의 섬김이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냥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받은 사랑을 흘러 보내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교회의 두 번째 비전, ‘함께 하는 공동체’를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무관심의 영역에 있는 이들이 없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우리의 관심 영역에서 사라진 사람들입니다. 명분은 있지만, 그들은 다시 우리의 관심과 사랑의 영역으로 돌아와야만 할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섬김에 있어서 어떤 결과와 열매에 칩착해서는 안 됩니다. 때때로 열매를 맺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법입니다. 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다만 섬길 뿐입니다. 사랑할 뿐입니다. 그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놀라워하는 것이 우리가 누릴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공동체를 섬기는 동기를 체크해야 합니다. 섬김의 동기는 교회의 활성화가 아니라, 받은 사랑을 흘러 보내는데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반응을 기대하면 실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받은 사랑을 흘러 보낸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수록, 더 많이 나눠줄수록 그것이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마땅히 그렇게 세워져 가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을 내 이웃과 함께 나눔으로 교회가 더욱 건강하고, 더 풍성한 교회와 지역 공동체를 이루면서, 결국 수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은혜가 우리 안에, 우리 교회를 통해 놀랍게 이루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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