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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교회가 성탄축하주일로 지키는, 대강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대강절이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기다린다’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약속하신 아들을 받기까지 25년을 기다렸습니다. 이삭은 아들을 아이를 낳지 못하던 부인 사라가 결혼한 지 20년이 지나서야 자식, 에서와 야곱을 낳았습니다. 야곱의 부인 라헬도 역시 아기를 낳지 못하다가 나중에서야 요셉과 베냐민을 낳았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믿음의 세 여인, 사라와 리브가, 그리고 라헬은 모두  불임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다가 아들을 얻었습니다.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하기 위해 400년의 세월이 지나야 했습니다. 물론 그 기간 모두 기다림의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상당히 긴 기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의 약속을 기다리며 참으로 오랜 세월을 보내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기다림에 매우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본문에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그 주님을 만난 사람 시므온이 소개됩니다. 그의 기다림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자는 뜻으로 ‘사람들’이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본문 25절을 보면,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6절에는 시므온이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9절에는 그가 성취된 약속으 보고, 이제 죽어도 좋다는 고백을 합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기다림의 종류

그러면 기다림이란 무엇입니까? 기다림은 세 가지 정도 있습니다. 첫째는, 행운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로또 복권을 사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수고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오직 확률에 의한 행운을 기대합니다.

둘째는, 열심히 수고한 후 그 결과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또 복권을 기다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한 후에 좋은 학교에 입학할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은 합당한 일입니다. 비즈니스를 열심히 하고, 그 결과 부요해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있고, 그로 인한 결과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기다림은 모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기다림입니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며, 또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반드시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거기에는 모두 불확실함이 존재합니다. 우리의 노력과 수고의 한계를 넘어서는 어떤 다른 요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요인들이 작용할 때 우리는 우리의 기대가 컸다고 해도 얻을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셋째는, 확실한 미래(약속)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가 성탄절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즐거운 놀이도 하고, 교회에서 연극이나, 성탄절 연주회를 하든가, 아니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기회도 많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성탄절을 기다립니다. 성탄절은 1년에 한 번씩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래서 성탄절을 기다리는 것을 결코 불확실하지 않습니다. 또 생일을 기다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른들은 생일을 기다리는 마음이 덜할지 모르지만, 어린아이들은 생일을 많이 기다립니다. 생일을 잊어버리고 지나갈 수는 있지만, 생일 자체가 우리를 배신해서 오지 않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기다림은 고난을 이기게 한다

또 하나 기억할 것은 확실한 미래를 기다리는 경우는 고난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즐거운 일을 기다릴 때는 절대 아프거나 피곤하거나 지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Field Trip을 가거나,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은 절대로 피곤하거나 아프지 않습니다. 그리고 늦게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엄마가 피곤하지 않냐고 물으면 절대 피곤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field trip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피곤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곧 누리게 될 여행의 즐거움이 확실한 미래로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기다림은 바로 field trip이나 자기 생일을 기다리는 어린 아이의 기다림과 같습니다. 성도가 천국을 소망하고 기다리는 것은 마치 이와 같은 기다림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믿음으로 주의 약속하신 것을 믿고 바라고 살아갈 때 성도는 고난을 이깁니다.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피곤도 이기고, 고통도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런 기다림은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도 극복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걸어간 길이 바로 그런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성도가 소망하는 것은 확실한 약속에 대한 기다림입니다. 그냥 마음으로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복권을 사고 기다리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성도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보면서 기다리면서 누리는 기쁨은 그 기다림이 성취된 후에 얻는 기쁨과 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믿음의 원리이며 개념입니다. 이런 기다림으로 인해 오는 즐거움은 마치 어린 아이가 field trip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누리는 기쁨과 같은 것입니다. 선물을 사서 가지고 올 아빠를 기다리면서 누리는 아이의 기쁨은 그 아빠가 문을 열고 아빠와 선물을 받고 누리는 기쁨과 질적으로 동일합니다.

그렇게 볼 때,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천국을 간다고 할 때, 우리가 예수를 믿고 이 믿음으로 인해 은혜의 삶을 산다고 할 때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인해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아직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아직은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Field trip을 가는 아이가 아직은 잠을 자야하고, 목욕을 해야 하고, 옷가지를 챙기는 등 짐을 싸야 하지만, 그것들이 절대로 지루하거나 하기 싫거나 하지 않고 즐겁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누려야 하는 기다림의 기쁨입니다.


성도의 기다림은?

오늘 우리는 대강절 네 번째 주일, 그리고 성탄축하주일을 맞아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어떻게 기다려야 합니까? 우리의 기다림은 어떤 종류의 기다림입니까?

첫째, 성도의 기다림은 확실한 약속에 대한 기다림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냥 어떤 바람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막연한 소망에 근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확실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흔들리면 우리의 소망은 로또 복권보다도 못한 소망이 되어 버립니다. 로또 복권은 매주 누군가가 그 복권을 타서 수령해 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다림이 로또 복권처럼 행운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이것은 그것보다 더 못한 기다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25절을 보면,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위로(consolation)’라는 말의 첫 단어를 대문자 C로 번역했습니다. 즉 이것은 구체적인 어떤 인격체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시므온이라는 이 사람은 이 약속을 어디에서 받아서 그를 기다렸을까를 찾아볼 때 그가 찾은 것은 이사야서였습니다.

이사야 40장 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그리고 이사야서는 40장 이후로 계속해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42장에 가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여기서 그 위로자가 누구인지를 좀 더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는 “내가 붙드는 나의 종”입니다. 그가 53장에 가면 고난 받은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가,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시므온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분명히 확신했습니다. 이 확실한 약속을 붙듦으로 그는 약속을 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갖는 가장 큰 딜레마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약속의 확실성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기다릴 때 대개 우리는 이런 말을 합니다. ‘이 길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만 있으면 내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겠다.
그런데 이 확신이 없기 때문에 기다릴 수도 없고, 다른 길을 갈 수도 없다.’고 합니다. 정말 우리는 이런 딜레마가 있습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약속이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인가 하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알아야 합니다. 말씀이 부족하면 아무리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려고 해도 결국 자기 생각의 한계 안에 갇히게 됩니다. 그것은 자기 암시이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일 수가 없습니다. 시므온은 말씀에 대한 아주 깊은 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것은 그가 사용하는 용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25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여기서 ‘이스라엘의 위로’라는 말은 구약성경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과 묵상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사야를 비롯해서 구약 성경에 나오는 메시야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26절을 보면,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는데, 여기서 그리스도라는 명확한 표현은 그가 장차 오실 분이 바로 어떤 분이신지를 아주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즉 이 말씀은 그가 얼마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자였는지를 알려줍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믿음과 기다림은 모래 위에 세운 집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기다림은 그냥 자기 생각일 뿐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저 사람이 아는 것 나는 모를까 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말씀을 읽고 또 읽고, 묵상하고 또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니면 말씀을 듣고 그것을 일주일동안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곱씹는 시간들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면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 성도의 기다림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안에서의 기다림이어야 합니다.

첫째 문제가 말씀에 기초한 확실한 약속을 붙들어야 한다고 했디만, 둘째 문제는 그 말씀을 주시는 분, 하나님, 바로 그분에 대한 인격적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확실해도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인 신뢰가 없으면 절대로 약속을 붙들고 기다릴 수 없습니다.

성도님들은 혹시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없으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알겠고, 이 일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해 주셔야만 해결되는 일인데, 만약 그분이 나몰라라 하시면 말짱 도루목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예수를 믿고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운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나 자신의 문제 앞에 서면 정말 그분이 나의 이 문제를 얼마나 안타깝게 생각하시고 계실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 적이 있으셨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할만한 관계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우리가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 같지만, 막상 삶의 구체적인 문제 앞에 부딪치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힘도 되지 않고, 그냥 나 자신의 의지로 버티는 것이 믿음인 것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이것은 아주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즉 그분은 결코 나를 벼랑에서 밀어내는 분이 아니라 나의 문제를 매우 깊이 관여하시고, 나의 아픔을 나보다 더 아파하시며 함께 하신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그분과의 깊은 교제가 필요합니다. 그분과의 깊은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는 그분을 배신할 수 있어도 그분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 분, 나는 그를 모를채 할 수 있어도 그분을 나를 결코 버릴 수 없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의지하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성탄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이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아주 깊은 인격적 차원의 기다림이어야 합니다. 그냥 성탄 추리와 화려한 장식을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의 이런 깊은 만남을 경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성도의 기다림은 내 삶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확신하는 기다림이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의 확실한 약속을 붙들어야 하고, 둘째는 말씀을 통해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 신뢰가 필요하다면, 셋째는 그 하나님께 주도권을 넘겨드려야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아주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린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언제든지 내 일을 내가 내 맘대로 틀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일하실 수 있으며, 우리가 어떻게 그분을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분의 역사를 기다리면서도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언제든지 내가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릴 수 없게 됩니다.

내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자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중심으로 모든 일을 하려고 하는 본성적인 성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는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분께 우리의 의지와 생각과 판단을 맡기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만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대체로 맞는 말입니다. 아니 궁극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기도 하고, 어려움에 처하게도 하십니다. 그런데 그냥 우리가 흔히 말하듯이 ‘하나님께서 당신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그 말이 당장은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돌아서면, 그리고 고난의 자리에 가면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인생의 위기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34-35절을 보십시오. 이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사역은 결코 위로와 소망의 사역만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이들에게는 패하는 징조가 되기도 하고, 마리아의 마음을 찌르듯 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항상 좋은 것만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고난을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견디기 힘든 어려움을 주시기도 합니다. 가장 두드러진 고난에 대한 예고는 창세기 15장 13절입니다.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에 이방 나라에서 400년 동안 그들을 섬길 것이고, 괴롭힘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창15:13, “여호와게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4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것은 출애굽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어떤 힘을 주었겠습니까? 우선 이 말씀이 주었음직한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큰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 약속을 받을 때는 아직 이삭을 낳지 전이었습니다. 물론 이스마엘을 낳기도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약속을 주십니다.
그 약속의 부정적인 면,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면이 있었지만, 이런 구체적인 약속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본인의 나이가 비록 75세가 훨씬 넘었지만,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실 것을 분명하게 붙들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이 약속이 애굽에 가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큰 힘을 주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노예생활은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있었고, 그래서 이곳에 온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어난 것이었다면 또한 이곳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으로 가는 것도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주권자이십니다. 그것을 믿을 때만 이런 하나님의 커다란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우리가 그분을 신뢰함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나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고난 중에도 기뻐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큰 역사의 수레바퀴를 운행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대강절 넷째 주일을 맞아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는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은 어떤 요행수를 바라거나, 복권을 기다리는 듯이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열심이 일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열심히 한 것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기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것은 확실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기다리기 위해 우리는 적어도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한 약속으로 붙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몰라서는 그분의 약속을 기다릴 수도, 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늘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삶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둘째는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인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믿고 알지만, 그분을 인격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면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깊이 기도하고, 그분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나아가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셋째는, 그분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삶에 대한 주권자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만을 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 눈에 보기에 어렵고 힘든 삶의 과정을 거쳐 가게 하시기도 합니다. 그럴 때 인생의 키를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주님을 기다릴 수 없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모든 주권이 그분께 있음을 기억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길 때 주님께서 참된 은혜의 삶을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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