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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를 두 부분으로 나눌 때 3장과 4장 사이를 경계로 나눌 수 있지만, 이를 4장 16절과 17절 사이를 경계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본문(4장 17절)부터 에베소서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권면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에베소서 후반부에 나오는 삶에 대한 권면은 철저히 전반부의 복음 자체에 대한 말씀에 근거합니다. 우리가 이미 에베소서 전반부를 여러 번에 걸쳐 말씀을 들었지만, 본문을 볼 때 우리는 복음에 근거해서 이 말씀을 해석하지 않고, 단지 도덕적, 윤리적 교훈처럼 듣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말씀은 전혀 그 본래의 의도와 다르게 이해됩니다. 그런 이유로 오늘 말씀은 전반부의 요약이라고도 할 수 있고, 후반부의 말씀을 나누기 위한 전제가 되는 복음, 혹은 구원의 문제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려고 생각합니다.


질문 1, “나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나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 때 보통 두 가지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답을 내가 스스로 믿기로 결심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답과,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셔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답합니다. 두 번째 답을 할 경우 다시 “그러면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안 부르신 것인가?”라고 질문하면, 아마도 성경을 공부한 분들은 “그들도 하나님께서 부르셨지만, 그들이 거부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우리가 결정해서 나왔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처음 질문의 답에 대한 모순을 가져옵니다.

믿음에 대한 이런 모순된 상황을 정확하게 정리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이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로마서 8장 29-30절을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 미리 정하셨으니, ~~ 또 미리 정하신 자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자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리 아시고(예지), 미리 정하셨으며(예정), 부르시고(소명), 의롭다 하시고(칭의), 그리고 영화롭게 하셨다(영화)는 모든 일체의 과정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또한 에베소서 1장 3-4절에는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께서 ~~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라고 말씀합니다. 그 외에도 요한복음 6:39, 17:12, 18:9과 사도행전 13;48, 18:10, 로마서 9:15, 16, 21, 23절, 에베소서 1:4, 5, 11 등에서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말씀합니다.

물론 이런 말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우리가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과정을 구원의 조건, 혹은 구원의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셨지만, 인간이 믿을 때 그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동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질문 2, “믿음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로부터 나오는, 구원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어떤 것입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2장 3절을 보면, 그 믿음조차도 우리가 스스로 갖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실 때 믿음을 고백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즉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고백하는 것 자체가 곧 성령으로 인하여만 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이고, 하나님의 결정에 달린 것임을 알게 됩니다.


질문 3, “인간의 구원을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러면 인간의 믿음, 그리고 그 믿음으로 인하여 얻는 구원의 은총을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만약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그 분을 믿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라면, 즉 예수를 믿는 것이 우리의 선택으로 인해 이루어지고, 그래서 우리의 구원 여부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우리의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면 우리의 구원을 결코 보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개런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어느 정도 선까지 결정해 놓으셨다고 하더라도 미혹에 쉽게 넘어가는 인간의 연약함에 나머지 믿음의 과정을 맡겨 놓았다면 우리는 평생 죽을 때까지 우리의 구원에 대해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천국에 갈 때까지 하나님도 누가 천국까지 올런지 장담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믿음의 자유를 주셔서 스스로 결정하시지만, 결국 누가 믿기를 결정하고 천국에 올 것인지는 아신다는 식의 이론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점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로마서 8장 35절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리고 같은 본문 37-39절입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 굳세게 천국까지 올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당신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리가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입니까? 이것을 우리가 믿고 의지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질문 4: “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이러한 복음에 대한 설명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갖게 합니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결정하신다면 나는 로보트와 같은 존재라는 말입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조작된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고린도전서 12장 3절을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라는 말씀은 인간의 의지와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각과 감정, 의지에 결코 당신의 힘으로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으십니다. 사탄은 인간을 그렇게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손상을 입히는 역사를 행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로 깨닫고, 생각하고, 느끼고, 받아들이게 하십니다. 때때로 인간이 더디게 반응하면 성령은 끝까지 기다리십니다. 오랜 시간 망설이고 주저하고 혼동 가운데 있으면서 잘 분별하지 못할 때 성령은 기다리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서서히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는 말은 우리에게 강제력을 행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이성과 판단과 감성을 도와주시고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로 고백할 수 없고, 구원에 이를 수 없지만, 그 하나님을 믿고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동시에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철저한 성령의 은혜로만 구원을 얻지만, 그 구원의 세계, 즉 하나님의 나라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의 의지를 통해 그분을 고백하고 그분께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 욜2:32).


질문 5: “우리가 그런 방법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가 힘써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 점에서 많은 혼돈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힘써 구원의 과정을 공부하고 난 후에도 마지막에 다시 삶에 대한 권면을 받을 때 우리는 다시 그것을 구원을 얻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시점에 오면 분명하게 우리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서 설명한 구원의 과정을 우리가 얼마나 분명하게 구원받은 사람인가를 확신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확신이 있을 때만 이후에 오는 말씀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주 큰 빚을 진 후 감옥에 가게 되었고, 엄격한 법의 집행으로 사형언도를 받았는데, 누군가가 그의 빚을 갚아주고 그를 감옥에서 구해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법적인, 형사상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독지가가 갚아준 돈과 여분의 돈이 예치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아무리 큰 죄를 다시 짓는다고 하더라도 감옥에 다시는 가지 않습니다. 아니 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삶은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과거의 삶이 계속됩니다. 이제부터 문제는 자기 삶에 대한 형사상의 책임을 지는데 있지 않고, 자신을 도와준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의 문제를 갖습니다. 즉 그 사람에게 미안한 것입니다. 그만하면 감사하고, 이제는 삶이 변화되어야 하지만, 잘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그 사람과의 개인적인 관계로 변화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대하는 성도의 마음입니다.

전에는 검찰에 쫓기면서 세상을 원망하고, ‘나만 죄인인가? 세상에 숨겨진 악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하며 세상을 원망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전에는 세상을 저주하고 원망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고, 자신이 이렇게 큰 죄인이라는 생각 때문에 편안한 마음을 갖지 못합니다. 신기하게도 전에는 진짜 법적인 죄인이었지만, 스스로는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지금은 법적으로 죄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죄를 바라보며 괴로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 깊이 통회하며 삶의 변화를 위해 몸부림칩니다.


결론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출발선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이렇게 자기 학대적인 삶을 사는 것이 바르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도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에 들어가면서 비로소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거룩한 삶을 향한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것은 참으로 힘든 길일 수 있지만, 아름답고 멋진 길입니다. 그 길은 이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셔서 그 하나님의 나라에 들여 주셔서 이미 그분의 통치와 인도하심 가운데 거하는 성도의 아주 아름다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되는 에베소서 하반부 말씀을 나누면서 천국을 향한 순례자로서의 기쁨과 은혜를 누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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