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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와서 느낀 점 중 하나는 “미국 사람들은 정말 개를 좋아하는구나.” 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정에서도 혹은 이웃에서도 강아지를 키우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요? 개를 길러본 사람은 개가 사람보다 나은 점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개는 주인을 대할 때 진심으로 대합니다. 개는 거짓으로 주인을 좋아하는 척, 주인의 마음을 속이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남을 욕할 때 흔히 개의 이름을 들먹입니다. 그러나 저는 "개만큼만 살아라"하고 싶습니다. 성스러운 예배시간에 이목사가 아침부터 뭘 잘 못 먹고 무슨 개 얘기냐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그러나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과 개는 아주 관계가 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말씀의 주인공이 '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일까요? 오늘의 주인공, 갈렙이라는 사람이 바로 개 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처럼 그의 주인 하나님을 진심을 다해 따랐던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열 두 지파에게 땅을 나누는 장면입니다. 본문에서는 여호수아의 조력자였던 갈렙도 자신이 받게 될 권리를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믿음을 함께 고백합니다.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 8절을 주목해 보십시오.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본문 8절을 NIV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합니다. “I, however, followed the LORD my God wholeheartedly” 그는 그의 인생황혼에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 마음으로 따랐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그의 주관적인 자기 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14절에서 증명해 주고 있어요.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음이라” 모든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께 충성한 자’라고 평가합니다. 여기서도 역시 충성이라는 단어를 NIV는 “wholeheartedly”로 번역합니다. 무엇이 그를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도록 했을까요? 어떻게 그는 평생동안 온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 수 있었을까요? 오늘 이 시간 갈렙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갈렙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누구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또 믿게 되었을까요?
그 답은 8절 갈렙의 고백 속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의 고백 중 갈렙은 “나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원래 이 말을 자주 사용하였던 사람은 그의 스승 모세였습니다. 모세는 늘 “나의 하나님…” 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제자 갈렙도 하나님을 모세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고백이 아니라는 거에요. 어떤 결정적인 결단이 있어야만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가능해 집니다.

지난 2월에 학생부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기도회를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우리 친구들이 기도를 잘 하지 못 하는 거에요. 뭔가 어색해 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좀처럼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보다 못해 제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사실 뭐 그리 대단한 제안도 아니었어요. 기도를 하기 전에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계속 부르는 일이었습니다. 미국의 어떤 교회 성장학 박사가 한국 교회가 부흥할 수 있었던 주된 요인 중 하나가‘주여 삼창’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더라 고요. 저도 ‘주여 삼창’을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날은 저는 주여 삼창 대신에 ‘아버지’를 큰 목소리로 계속해서 부르게 했습니다. 그런데요, 놀랍게도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이렇게 크게 외쳐 부르던 아이들의 입에서 어느 순간 기도가 마구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기도가 나중에는 멈출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기도회를 마치고 어떤 학생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기도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제 6학년이 된 한 친구는 저에게 이런 인상 깊은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그 동안은 부모님 때문에 교회에 다녔는데, 이제는 제 신앙으로 교회에 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무디 신학교의 학장이었던 죠지 스위팅(George Sweeting)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는 자녀가 있을 뿐이지 손자는 없다.” 무슨 말인가요? 부모의 신앙으로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내가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습니다. 내 아버지가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그 하나님을 나도 나의 입술로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와서 중고등부 학생들과 드리는 첫 예배시간에 “모태신앙인 친구들 손들어 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 못…해, 그게 뭐에요?”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 했습니다. “우리 친구들이 기도도 못해, 찬송도 못해, 전도도 못해 그래서 여러분을 못해 신앙이라고 하는 거에요.” 라고 말을 했더니 “아, 그렇구나.” 하면서 정말 인줄 알더라고요. 우리 아이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단어일 것 같아서 다시 잘 풀어서 설명을 했더니, 그때서야 거의 대부분의 자녀분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주일학교 친구들이 부모님으로부터 훌륭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자동적으로 여러분의 자녀분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든다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의 자녀에게도 결단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갈렙 역시 “모세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고백하는 결단이 있었습니다. 이 결단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평생 동안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 해서 좇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결단,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갈렙의 결단과 함께 갈렙이 하나님과 떨어질 수 없도록 단단하게 하나님과 그를 묶어주던 것이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게 뭐였을까요? 그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9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간직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12절 말씀을 또 보십시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처럼 붙들고 살았습니다.

이동원 목사님의 책 중에 이런 글이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현대 기독교인들에게는 두 가지 비극이 있는데, 하나는 ‘말씀에 대한 무지’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말씀은 알아도 그 말씀을 주장하면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영향을 줄 수 없다면 내가 온전히 하나님을 좇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통계적으로도 이 사실은 증명이 됩니다. 복음주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에릭 머텍서스(Metaxas)는 '젊은 무신론자들에게서 배울 점들: 왜 그들은 기독교를 떠났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지난 달 크리스천포스트(CP)에 게재하였습니다. 그는 신앙을 잃어버리게 된 많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조사에 응한 젊은이들 중 많은 수가 교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청소년 그룹의 리더로 섬기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몇 년 후에는 무신론자로 변해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그런 그들을 무신론자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성경을 진지하게 가르치지 않는 목회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오늘날 청소년 사역은 대부분 어떻게 하면 그들을 지루하게 하지 않을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 결과 그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할애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가르치기보다는 즐겁게 놀아주거나 '친구'가 되려고만 애쓰는" 목회자들은 어린 교인들을 점차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결국 젊은 무신론자들을 키워낸다고 그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결국은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내 신앙은 모래 위에 지어진 집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신앙을 지탱시켜주는 반석임을 믿으십시오. 내가 온전히 하나님을 좇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 있어야만 합니다. 아침마다 성경을 읽을 때, 시시 때때로 그 말씀을 읽을 때, 그 말씀을 나를 향한 주의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것이 온 마음으로 그분을 따를 수 있는 길 임을 믿습니다.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고 또한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했습니다.11절과 12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갈렙은 말합니다. “보십시오. 아직까지 저는 건재합니다. 이 땅을 지킬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이 갈렙 자신의 능력이었나요? 아니에요. 갈렙의 낙관은 단순히 “나는 아직까지는 땅을 지켜낼 힘이 있습니다.”라는 자신감이 아닙니다. 그의 힘의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12절 하반부를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습니까? 내 모든 것을 다 맡길 만큼 그분을 신뢰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나는 정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확신하십니까?

줄타기 곡예사인 블론딘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미국과 캐나다 양쪽에 외줄을 걸어놓고 신기한 줄타기 곡예에 성공해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그가 막대기 하나를 들고 그 거센 물살과 폭포가 휘몰아치는 나이아가라 위를 가로질러 외줄을 타고 캐나다 쪽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우렁찬 환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도착한 그는 박수를 치던 사람들에게 한마디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 막대기를 들고 또 다시 미국 쪽으로 갈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예. 믿습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때 그는 다시 그 앞에 앉은 꼬마들에게도 물었습니다. “여러분도 내가 이 막대기를 들고 미국 쪽으로 건너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역시 꼬마들도 “네. 믿습니다!” 하고 크게 소리를 쳤습니다. 그때 그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제가 이 앞에 있는 소년들 중 한 소년을 등에 업고 건너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사람들의 소리가 아까보다는 작았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과 꼬마들이 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맨 앞줄에서 소리치던 꼬마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너 내 등에 업히지 않을래?” 그러나 크게 믿는다고 소리쳤던 꼬마는 업히기를 주저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꼬마에게 물으려 할 때, 느닷없이 어떤 꼬마 하나가 “아저씨, 저는 아저씨를 믿어요. 제가 업힐게요.”하며 앞으로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그는 그 천진난만한 꼬마를 등에 업고 안전벨트로 잘 묶은 다음 다시 막대기를 들고 미국 쪽으로 줄을 타고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그 아이의 부모님은 나중에 아이가 살아 돌아오면 다시는 그런 짓 못 하도록 두들겨 패 줘야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결국 그는 꼬마를 업고 줄타기를 성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아이들이 믿는다고 소리치긴 했어도 막상 자기의 생명을 맡길 만큼 그를 믿은 사람은 어린 꼬마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 제가 감히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하나님을 신뢰하십니까? 당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을 만큼 그분을 신뢰하십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은 오늘 이 시간 저와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 딸아, 너는 나에게 업힐 준비가 되었느냐?” “외줄과 같은 너의 인생의 길에서 나에게 네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겠느냐?” 내 심령에 들려주시는 이 하나님의 음성에 “네. 내가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해 온전히 따르겠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끝자락에 서게 되었을 때, 갈렙과 같이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 마음을 다 해서 따라왔습니다.” 어떻게 그가 평생토록 하나님만을 온 마음으로 따를 수 있었을까요? 갈렙에게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개인적인 결단이 있었습니다. 또한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을 철저히 신뢰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 먼저 하나님을 그 누구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십시오. 결단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을 철저히 신뢰하는 삶을 사십시오. 그럴 때 나의 믿음의 고백뿐 아니라 하나님과 나의 자녀들과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갈렙과 같이 “당신은 그대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 마음으로 따랐습니다.”라고 인정받는 그러한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 마음으로 따랐습니다.”고백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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