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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일 전에는 에베소서 4장 7-10절의 말씀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분량대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7절).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말하려고 하다가 그것이 우리의 분량대로 주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분량을 따라’ 주신 것임을 말하면서, 말할 수 없는 감동에 젖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은사에 대해 말하면서 이를 거저 주신 너무도 놀라운 ‘은혜’임을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이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우리에게 그 은혜를 주시기 위해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으며 부활과 승천하심으로 죄에 사로잡힌 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사로잡아 하나님의 자녀로 이끄셨다는 위대한 고백을 했습니다. 이것이 지난 주 나눈 말씀의 요지입니다.


서론

오늘은 7절 말씀에서 본래 이어가려고 했던 말씀인 11절과 12절을 통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7절을 다시 봅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원문에는 7절 앞에 “그러나”가 있습니다. “그러나”는 앞의 내용(4장 6절까지)이 흐름상 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에베소서 2장 이후부터 말씀하는 요지는 교회의 하나 됨입니다. 2장 14절의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됨”에 대해 계속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7절에서는 말씀의 방향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하나 됨을 강조할 때는 마치 개인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전체로만 보시지 않고 개인을 각자로 보십니다. 7절에 “(그러나) 우리 각 사람에게”로 시작하는 말씀은 말씀의 방향이 전체의 하나 됨으로부터 각 개인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전체로도 보시지만, 또한 개인으로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은사는 서로 다 다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교회로서 하나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서로 너무도 다릅니다. 서로는 같지 않고 오히려 개인의 특징을 뚜렷하게 구분지어 줍니다.

한 주 전 16명의 성도들이 도미니카 공화국에 단기선교로 다녀왔습니다. 함께 갔던 분들, 특히 장년 성도들은 대부분 마음 속으로 ‘그곳에 가서 내가 뭘하지?’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가서 사역을 하면서 그렇게 할 일이 많고 바쁘고 열심히 했는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 달랐기 때문에 완성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고약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번 단기 선교에서 빠져도 될 사람이 누구였을까? 한 사람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대개 인간관계를 경쟁구도로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면 비교하려는 마음이 많이 있습니다. 서로 너무 다른 사람은 비교하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는 부부 안에서도 역할이 비슷해져가고 있고, 성형수술 등을 통해 얼굴 모습조차도 비슷해져 갑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보다 더 많이 비교하는 삶의 구조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같이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서로 다르게 창조하셨고, 그렇게 하심으로 전체를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이 비밀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늘 비교하는 마음을 가지고 불행한 삶을 벗어나기 어렵게 됩니다. 어떤 공동체든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본래 의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

7절의 “그러나”는 그런 의미입니다. 성도 개개인을 서로 다르게 만드시고, 서로 다른 이들의 모임을 통해 전체의 하나를 이루어가십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주님은 교회에 사역자를 세우셨습니다. 본문에는 네 종류의 사역자를 언급합니다.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 그리고 목사와 교사를 주셨습니다. 사도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훈련을 받은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특별한 상황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는 특별한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알지 못했던 구약 안에서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과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의 기록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둘째는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은 신약성경이 아직 기록되기 전에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받아 초대교회에 말씀을 가르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가보와 같은 사람(행11, 21장)이 대표적인 사람이었고, 고린도전서 14장에서도 이런 관점에서 예언에 대한 교훈을 줍니다. 신약성경이 기록된 후에 선지자직은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셋째는 복음 전하는 자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복음 전하는 자는 지금의 전도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을 따라 다니며 복음을 전하거나, 혹은 독립적으로 순회하면서 사도들이 세워놓은 교회를 목양하고 가르치던 사역자들을 지칭합니다. 디모데와 디도, 혹은 빌립과 같은 사람이 여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세 직분은 오늘날은 없는 직분입니다. 이 세 직분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말씀이 글로 기록되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능력을 받아 복음을 전하고 초대교회의 기초를 놓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쳤다는 점입니다. 이들의 사역을 교회의 역사 속에서 이어오던 사람들이 바로 목사와 교사입니다. 목사와 교사는 별도의 다른 두 직분이 아닙니다. 이 두 단어는 한 관사로 연결되어 있고, 실제로 교회의 역사 속에서 한 사람에 의해 동시에 시행되던 직분입니다. 목사란 양을 치는 목자라는 말에서 나온 말로, 성도를 보살피고 격려하며 세워가는 직책을 의미합니다. 또한 교사란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책망하고 바른 진리를 깨우치는 역할을 하는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전자는 제사장적 직분에 가깝고, 후자는 선지자적 직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역자를 세운 목적

그러면 주께서 이들을 교회에 세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2절입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것이 주께서 교회에 목양하고 가르치는 사역자를 세우신 목적입니다. 그들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사명을 맡았습니다.

본절은 조금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라고 시작하는데, 옛날 성경(개역성경)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라고 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여”와 “하며”는 성경 해석에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옛날 성경대로 “하며”라고 해석하면 12절에 나오는 세 가지 사역, 즉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지거나 순서에 큰 문제를 갖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하여”라고 번역하게 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데 있어서 순서의 중요성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즉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라는 말은 봉사의 일을 하는 것보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일이 반드시 먼저 와야 한다는 뜻을 갖습니다. 온전하게 성장하지 않은 성도가 봉사의 일을 하는 것을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성경을 통해 교회에 기대하는 바가 아닙니다. 그래서 성도는 반드시 먼저 말씀을 배우고 성장하고 온전해지는 과정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도전

이 점에 있어서 오늘날의 교회는 심각한 도전을 받습니다. 그것은 교회에서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성경공부나 제자훈련들이 성도의 삶을 구체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생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훈련을 받아도 별로 삶과 생각과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자훈련을 받은 사람보다 오히려 받지 않은 사람이 더 나아보이기도 하고, 예수를 믿은 지 오래된 사람들보다 처음 믿은 사람들이 차라리 더 순수해 보이고 깨끗해 보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은 현대교회가 직면한 심각한 현실입니다.

만약 이런 생각과 현실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아주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씀의 당위성과 능력이 부정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잘못 믿고 잘못 훈련을 했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이 아닐 것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말씀 앞에 더 심각한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훈련하되, 말씀에 목숨을 거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말씀 공부는 지적인 유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훈련은 마음을 수련하는 과정도 아닙니다. 말씀을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며,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당신의 뜻을 행하시는 선포입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해야” 합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봉사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성경을 주신 목적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목적도 사역자를 주신 목적과 동일함을 말씀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도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의 일차적인 사명을 말씀을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온전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생각하는 것은 목회의 속도를 더 천천히 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교회의 성장에 관심을 많이 갖습니다. 교회가 외적으로 모이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제일 우선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교회에 적응하고 여러 곳에서 교회를 섬기는 일을 감당하는 것을 기대합니다. 물론 그런 일들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 각자가 말씀으로 온전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교회는 교회당 건축을 위해 만 5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곧 입당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5년의 세월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언제 입당하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곧 하게 될 것 같다고, 아마도 올 해는 넘기지 않을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지난 해에도 그렇게 대답했고, 그 전 해에도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묻는 사람들은 아마도 교회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지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과정으로 삼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답답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 시간 동안도 일하셨고, 우리를 세워가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이었고, 교회에 사역자를 세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온전하게 함을 기억하자

오늘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 모두가 꼭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온전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으로 온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상식적인 선에서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기대이면서 교회에 사역자를 세우신 목적입니다.

저는 장로교 목사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예정을 믿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예정을 부정합니다. 저도 그런 영향을 조금씩 받아서 표면적으로 조금도 의심 없이 하나님의 예정을 믿는다고 했지만, 조금씩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고민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하나님의 예정을 새롭게 깨닫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을 다시 깨닫고 확신하는 순간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저에게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먼저 저에게 평안을 주었습니다. 장래의 두려움, 질병과 재정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온전히 자유해지는 경험을 누렸습니다. 조급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여유와 감사의 마음을 넘쳤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을 다시 깨닫는 순간 저의 삶에 찾아온 놀라운 변화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도 부드러워지고, 인격적 성숙함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온전함을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온전함은 말씀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믿고 말씀에 순종할 때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주께서 자신과 여러 사람들을 교회의 사역자로 세우셨고, 그들을 통해 선포되고 가르쳐지는 말씀이 교회를 온전하게 함을 선포합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의 삶에 하나님의 역동적 은혜가 가능한 것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집중할수록 우리 개인과 교회가 더욱 건강한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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