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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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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여름부터 시작해서 절기나 특별한 주제의 설교를 할 때를 제외하고 계속해서 에베소서의 말씀을 본문의 순서를 따라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설교를 흔히 강해설교라고 하지만, 단지 본문을 연속적으로 보는 것을 강해설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강해설교의 바른 정의는 말씀의 의미를 역사적 상황과 본문의 문맥적, 문법적, 문화적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말씀이 그 시대에 무슨 의미로 선포되었는지를 먼저 고려한 후 그 말씀이 오늘의 우리들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찾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보려고 할 때 우리가 흔히 그냥 그 말씀 자체가 좋아서 즐겨 암송하던 말씀들이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소 다른 의미(메시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합니다. 사업하는 분들이 흔히 좋아하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는 말씀, 그리고 누가복음 5장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고백하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눅5:5)는 그렇게 긍정적인 의미만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런 말을 하면서 그의 마음 속에는 주님을 향한 숨겨진 빈정거림이 다소 있었습니다. 그것이 많은 고기를 잡은 후 주님 앞에 엎드려 “나를 떠나달라”고 회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자신의 숨은 나쁜 의도가 들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래서 말씀은 문맥을 따라 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그런 면에서 더없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1절에 “그러므로”라는 말 때문입니다. 바울 서신에는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참 많이 나오지만, 본문에서 그 중요성은 가장 크게 드러납니다. 이 ‘그러므로’는 에베소서를 1-3장과 4-6장을 구분시켜주고, 또한 연결시켜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에베소서의 전반부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설명(선포)해 줍니다. 그리고 에베소서의 후반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구원의 역사에 근거해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후반부의 명령은 전반부 없이는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만약 전반부의 말씀을 없애고 갑자기 후반부의 말씀만을 선포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율법적 억압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2절을 보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며”라고 말씀합니다. 겸손과 온유, 인내와 사랑과 용납에 대해 말씀합니다. 말씀 자체로 문제가 없지만, 누구도 이런 권면을 개인에게 하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이런 권면이 자신의 삶에 유익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이 유익을 주고 필요한 이유는 오직 에베소서 전반부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 사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가 없으면 본문의 말씀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이 너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설교자도 이런 설교를 잘못하면 ‘당신이나 잘 하세요’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율법적인 삶을 강요하지 말라’는 반응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이런 권면이 오늘날 힘을 잃어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러므로’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이러한 명령 앞에서 마땅히 순종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만약 이런 명령이 부담스럽거나 율법적으로 느껴지거나 혹은 ‘나도 힘든데 어떻게 겸손하고 오래 참으라고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지체없이 에베소서 전반부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에베소서 전반부의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고백하기 전에는 4장 이하의 말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에베소서 말씀 전체는 하나의 하나의 맥락이 있는 설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하나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이해하는 일을 힘든 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질문하는 성도

사도행전 2장에 성령강림사건이 나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도들이 다른 말로 말씀을 전하고, 사람들이 이에 대해 기이히 여기자 베드로 사도가 일어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이로 인한 구원의 역사를 선포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2:37) 그러자 베드로는 다시 말씀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행2:38).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이런 질문(반응)이 필연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런 질문(반응)이 없이 다음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4장 이하의 말씀은 3장과 4장 사이에 이런 반응을 전제한 말씀(명령)입니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1장 3절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우리는 그 말씀을 선포된 그대로 믿는다면 당연히 이렇게 반응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복을 주셨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그 신령한 복을 누릴 수 있는거죠?’

에베소서 2장 14절,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라고 하는 말씀을 들었을 때 우리는 ‘그래요? 그게 사실이예요? 우리에게 그렇게 놀라운 일이 생겼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의 집 하인에게 저는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그와 나 사이에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형제가 되었다면 제가 이제부터는 그에게 존대를 해야 하나요? 저는 유대인인데 이제부터는 이방인과 악수를 해도 됩니까?’ 흥분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런 질문을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이어지는 4장 이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질문이 없다면 4장의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도 뻔한 말씀이고, 건조한 말씀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난 주일 저녁에 메릴랜드 베다니 장로교회에서 두 분의 장로님께서 오셔서 우리교회 단기선교팀을 위해 선교 세미나를 해 주셨습니다. 그 중 한 장로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담임목사님께서 인도하는 크로스웨이 성경공부를 듣는데, 그는 지금까지 무려 3번이나 들었다고 합니다. 본인도 성경공부를 가르치고 인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듣고 배우기를 힘쓴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본래의 자리, 즉 자신의 믿음의 이유를 밝혀주는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가 열심히 수고하고 땀을 흘려도 왜 그렇게 하는지를 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도 에베소서 1-3장의 고백이 필요합니다. 1-3장의 말씀이 없이는 4장 이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고,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공부가 최선은 아니다

하나 더 나누고 싶은 내용은 에베소서 전체를 하나의 설교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렸고, 그 말은 전체를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문의 “그러므로”가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말씀드렸고요. 하지만 그러다 보니 성경의 맥락 자체를 이해하는데 지나치게 집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필요하지만, 맥락 이해가 필요하다는 말은 질문의 중요성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즉 에베소서 1-3장을 듣거나 연구하거나 묵상한 후 우리의 마음 속에 자연스럽게 “하나님! 그러면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해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이고, 주의 명령에 순종할 자세를 의미합니다.

맥락 이해가 단순히 성경의 흐름을 지식적으로 이해하는 것 자체를 말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대한 논리적 이해가 필요하지만, 논리적 이해 자체가 곧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들었을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전인격적으로 그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그 말씀에 지적인 면만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그리고 의지적으로 응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알고 있었고, 메시야를 경배하기 위해 온 동방 박사들의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1시간 이면 닿을 수 있는 베들레헴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자신들이 지닌 성경 지식에 비해 얼마나 반응하지 않는 자들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그렇게 지식적인 면에서 논리와 흐름만을 추구하는 것은 옳은 자세가 아닙니다. 성경의 흐름을 아는 것은 그 말씀에 반응한다는 뜻입니다. 즉 주님께서 주신 삶의 명령, 본문에 나오는 대로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과 사랑과 관용과 같은 것들을 그냥 하려고 해서는 안 되며, 에베소서 전반부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고백과 확신 위에 순종할 필요가 있음을 뜻합니다. 만약 우리가 말씀에 그렇게 반응하지 않을 채 시간이 흘러가고 나면, 우리는 후에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응하는 성도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반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믿음과 삶에 “그러므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 그분의 십자가의 길을 가고자 할 때 그에 대한 충분한 이유를 우리 안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 쓰러질 수 있고, 믿음의 방향을 잃은채 방황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기경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마음은 너무나 거칠어져 있습니다. 복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전반부에 대한 철저한 묵상과 고백,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 뒤에 나오는 명령과 약속만을 붙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서 오랜 시간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성장은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말씀 안에서 더 풍성한 주의 은혜를 누리고, 그 은혜로 반응하는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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