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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13절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자기 아이들을 만져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등을 두드려 주시며, 안아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워낙 세상이 바뀌어서, 어린 아이든지, 다른 사람을 터치하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잘못하면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서로 터치하는 것은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린 아이는 물론이고, 어른들조차도 서로 터치하는 것이 서로를 신뢰하는 마음을 전달해 줍니다. 사람들이 다가와서 양복 위에 작은 먼지라도 털어주면 그런 모습 안에서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 배려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터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매일 부모가 자녀를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칭찬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음식을 주고, 옷을 입혀주고, 학교를 보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이런 만남과 터치가 가정 안에서 우리 자녀들을 건강하게 합니다. 자녀가 아무리 잘못 했어도 가족들은 그들을 지지해 줍니다. 절대적 지지,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에서 생각해 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훨씬 더 힘있게 살 수 있게 합니다.

한국의 유명한 소설가이며, 잘 알려진 사람이 있는데, 그의 혼외 아들에 대한 기사가 한참 인터넷에 올랐습니다. 이 사람의 혼외 아들은 모 일간지에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들의 속사정을 우리가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그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마음에 원망하는 마음이 얼마나 많았을까 싶은데, 그의 인터뷰 내용에는 전혀 그런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고, 다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인터뷰 내용은 ‘자신을 아들로 대해줬으면 좋겠다.’ 혹은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는 등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한 젊은이의 마음을 깊이 보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터치가 필요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만져 주시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 그 작은 아이들을 하나씩 안고 기도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해서 그 아이들이 장래에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으나 이렇게 만져 주시고, 안아 주시고, 기도해 주는 것은 참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녀를 데리고 예수님의 만져 주심을 바라는 부모들을 제자들이 꾸짖습니다.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모들이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오는 것을 막았을까요? 사실 제자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들을 꾸짖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당시 시대적 사고를 볼 때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행동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아이들을 꾸짖을 때 이에 대해 조금의 문제도 갖지 못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도 자기들의 판단과 행동을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의 사역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막음으로서 예수님의 사역에 효과적으로 참여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아주 담대하게 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막았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막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올 필요도 없고, 도움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막았습니다. 어떤 면으로 봐도 제자들의 눈에는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이 별 유익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너무도 아프게 하는 것이었고, 더 나아가 분노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행동에 대해 노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세상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당시 보편적인 가치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아주 담대하게 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막았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도 예수님의 터치가 필요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야 했고, 주님의 사랑을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듬어 주시고 위로하시는 것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이를 막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오늘날도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오늘날은 그 때와는 너무도 다르게 시대가 발전한 시대이지만, 여전히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예수님께 가는 것을 막는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부모들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자녀들이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막는 장본인은 바로 부모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돕는다는 이유로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가로 막고 있듯이 오늘날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오는 아이들을 막은 이유는 그 시대의 보편적 가치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부모가 자녀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막는 이유도 역시 이 시대의 가치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시대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세상의 성공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한결같이 가장 큰 가치를 성공에 두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가치 기준은 자녀들에게 학업에 전념하도록 요구하게 됩니다. 물론 맞습니다.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학생은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복음을 위해 순교할 수 있듯이 하나님의 자녀는 그렇게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부가 목적이고, 하나님은 수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부모들에게도 하나님은 자기 자녀가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성적을 갖게 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우리 자녀의 생명의 주인이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때때로 자녀가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하고, 공부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릴 때, 우리는 아이가 학업의 목적에 대한 깊은 고민의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고민은 공부가 힘들 때 하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공부가 힘들고, 공부가 어렵고, 도무지 더 이상 공부하고 싶지 않을 때, 내가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믿음 안에서 고민하도록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개의 부모들은 그 고민을 하지 못하게 막습니다. 그런 생각은 대학 가서 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녀들로 하여금 고민하지 못하게 하고,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말씀 안에서 자신의 삶의 방향과 목적을 찾아가는 일을 중단시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아이를 죽이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공부의 목적을 찾지 못해 고민하며 그것을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와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만져주십니다. 주님께서 내 자녀의 마음을 터치하실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한 후 이세벨의 협박에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을 가서 로뎀 나무 밑에서 죽기를 구하였습니다. 그 때 너무 지쳐 있던 엘리야를 여호와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셔서 위로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9장에 보면, “여호와의 천사가 어루만지며 가로되 ‘일어나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을 마시고는 다시 엘리야는 잠이 듭니다. 깨기를 기다리던 천사는 다시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먹은 후 엘리야는 4일 밤낮을 걸어서 호렙 산까지 갑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힘을 그에게 공급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힘을 북돋두어 주시도록 기다리지 못합니다. 그것은 부모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부모가 그 때 해야할 정말 중요한 일은 부모도 동일하게 하나님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찾아 함께 가는 동행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가 느끼는 문제가 내 문제이고, 내가 느끼는 문제가 곧 그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내 문제를 자녀에게 나누고(상담하고), 자녀의 고충을 부모가 듣고 하는 중에 얼마나 아름다운 일들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겠습니까? 정말 멋진 일 아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과연 무엇을 보여주고 있느냐 하는 문제다. 내가 지금 나의 자녀들에게 “그래!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일만큼은 포기해서는 안 돼!” 라고 말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너의 인생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 불안해 하지 말고 조용히 기다려봐.” “두려워하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를 선하게 인도하실거야.”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로부터 자녀들에게 그런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지금 우리는 우리 자녀들이 본문에 나오는 부모들처럼 예수님께로 나아가도록 하고 있습니까?

우리 자녀들이 지금 부모의 언어와 행동과 삶을 통해서 참으로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리고 자녀들의 눈에 비친 부모들이 지금 그 믿음의 능력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가? 그렇게 해서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고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들을 책임져 주시고, 이 모든 것을 더하시는 은혜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께 맡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늘 고백하는대로, 우리가 늘 그렇게 믿는대로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산성이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이시며 보장이시고 방패시고, 구원이시라면 그분께 우리 자녀를 맡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우리 자녀를 만져주시도록, 우리 주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터치하시도록, 우리 주님께서 우리 자녀들의 고충과 아픔을 들으실 수 있도록, 우리 자녀를 잡고 있는 우리의 손을 내려놓고, 그들을 주님 앞에 부드럽게 밀어내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내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내가 예수님의 제자들과 동일하게 세상의 보편적 가치를 따라 행동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가치관은 깊이 보면 대부분(모두) 이기적입니다. 그 안에는 탐욕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중심적입니다. 그것들이 우리를 위한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과 이웃을,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을 생명 없는 고난의 자리로 떨어지게 합니다.

우리 자녀가 예수님께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한참 머물 수 있도록 여유를 주어야 합니다. 엄마와 아빠의 소리가 아니라,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음성은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40일을 걸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성경에서 40은 보통 인생을 수를 의미합니다. 세상을 이기소 승리할 수 있는 참 놀라운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따뜻한 손길이 우리 자녀들을 만져 주심을 보고 조금 떨어져서 그 자녀가 누리는 은혜를 보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부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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