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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

성탄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아기로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역사 속에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탄생 이야기는 보통 사람들의 출생보다 훨씬 더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쳤습니다. 오늘 마태복음 2장과 누가복음 2장은 그분의 출생과 더불어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흔히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모든 위기와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이 말씀하려는 본래의 의미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위험에 노출되었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마굿간에 태어난 아기

누가복음 2장을 보면, 마리아가 처녀로 잉태했을 때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로마가 다스리는 모든 지역의 주민들에게 호적신고를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자기가 태어난 곳, 혹은 자신의 원래 거주하는 곳으로 가서 호적 신호를 하도록 한 것입니다. 당시 호적 신고는 세금을 걷고 그들을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14년 마다 행해졌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때를 맞춰 요셉과 마리아는 호적을 신고하러 그들의 원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왔고, 각처에서 사람들이 베들레헴에 몰려들어서 그들은 머물 여관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출산을 가까워 왔지만, 머물 여관을 구하지 못한 요셉과 마리아는 할 수 없이 마굿관에서 아기 예수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요셉이 얼마나 변변치 못한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 부인이 아기를 낳는데, 아무리 여관이 만원이라기로서니 출산할 방 하나 구하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통해 더 큰 일들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기 예수의 마굿간 탄생과 말 구유에 누이신 것을 목자들에게 메시야를 알리는 사인으로 삼으셨습니다. 설령 그날 여러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마굿간에 태어난 아이는 유일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탄생 이야기

마태복음은 그 이후의 사건을 말씀합니다. 아기 예수는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는 과정에서 당시 로마 정부의 임명을 받아 유대 지역을 다스리던 헤롯 왕에게 메시야 탄생의 정보를 주었습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헤롯 왕은 베들레헴 부근의 모든 아기들을 죽이는 처참한 살해극을 벌이게 되었고, 이로 인해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천사의 지시를 받아 애굽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애굽에 얼마간 있는데 팔레스틴을 다스리던 헤롯 왕이 죽었습니다. 주의 사자가 꿈을 통해 요셉에게 이스라엘 당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 보니 유대 지역은 아켈라오라는 헤롯의 아들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알기에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는 헤롯보다 훨씬 더 잔인했었습니다. 아켈라오라는 헤롯의 아들은 너무 잔인해서 당시 팔레스틴 백성들의 원성을 샀고, 이런 일들로 인해 로마 정부(당국)에 의해 폐위되고 말았습니다. 그 정도로 잔인했던 왕이었습니다.

나사렛으로 가게 된 경위

이런 일로 요셉과 마리아가 두려워하였습니다. 아마도 많이 근심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는 과정 중에 하나님께서 다시 꿈을 통해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지방으로 가도록, 갈릴리 중에서도 나사렛이란 동네로 가도록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2-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이 말씀을 보면 마리아와 요셉이 어린 예수와 함께 나사렛으로 간 것은 그들의 고향이기 때문에 돌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행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예수님의 탄생 사건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의 출생과 더불어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고 인도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사렛에서 마리아가 잉태하였지만, 베들레헴으로 옮기셔서 출산하게 하심으로 마리아는 자칫 처녀로 아기를 가졌다는 추문에 휩싸일 위기를 모면하게 하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받음으로 헤롯 왕에 의해서 죽음을 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꿈을 통해 그들을 애굽으로 내려가게 하셨습니다. 헤롯이 죽은 후 이스라엘 땅으로 되돌아 왔을 때 헤롯보다 더 악한 아켈라오가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나사렛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나사렛은 그들이 정말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아켈라오라는 특별한 상황을 통해 하나님은 마리아와 요셉의 마음을 움직이셨고, 그들을 나사렛으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얼마나 정확하고 세밀하게 인도하시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출생 후 초기 몇 년 간 있었던 일을 가만히 보면 그분의 인생을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와 마리아, 요셉은 하나님의 놀라운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았지만, 그러기 전에 그들은 훨씬 더 많은 고난과 어려운 상황으로 몰려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마리아는 처녀로 임신하는 어려운 상황을 받아들였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고, 증명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베들레헴으로 와서 아기 예수를 출산했지만, 출산할 변변한 방 하나 구하지 못하고 마굿간에서 출산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동방박사의 경배를 받았지만, 그로 인해 헤롯 왕의 추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로 돌아왔지만, 그들은 다시 나사렛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구원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모든 위기에서 구원하셨지만, 그들이 얻은 구원은 매 순간마다 숨막히는 상황에서의 구원이었습니다. 항상 죽음의 위기에서 얻은 구원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구원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우리도 이런 구원을 원할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런 구원이 하나님의 구원이라면 우리는 아마도 숨 막혀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은 이 놀라운 구원을 물질적인 구원으로 변질시켜 버립니다. 건강을 주시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고, 삶의 조건들이 좋아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복이라고 규정짓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은혜의 자리에서 멀어져 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아기 예수와 마리아, 요셉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그 순감만큼은 삶 자체가 곧 목적이었습니다. 우선 살아내는 것이 큰 일이었습니다. 살아내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었고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아내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우리는 삶을 더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살려면 뭐하러 살어?” 하는 말입니다. 삶이 변변치 못할 때 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자기 생명을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현대인은 다분이 유물론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뭔가를 가지고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의 조건을 가지고 살지 않으면 삶의 목적 자체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의 생애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사실 비교 자체가 어려운 이런 상황을 놓고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함께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장의 맥락

마태복음 2장에는 네 번의 구약인용구절이 나옵니다. 그 중 첫 번째 것은 6절인데, 이 말씀은 미가서 5장 2절 말씀의 성취로 말씀합니다.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태어날 것을 예고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6절에서는 조금 다르게 표현되어 “유대 땅 베들레헴”에 출생하셨다고 서기관들을 통해 말해집니다. 유대 땅은 이스라엘 지역의 중심지역입니다. 또한 23절에는 그 예수가 선지자에 의해서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고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씀은 구약에 없습니다. 구약에는 ‘나사렛’이란 지명 자체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잘 보면 여기서 마태는 선지자라는 말을 복수로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나사렛 사람이라 칭할 것’이라는 말씀은 한 선지자의 선포가 아니라 여러 선지자들의 선포를 요약한 것입니다. 즉 고난 받는 예수,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흠모할만한 것이 없는 예수의 출생을 ‘나사렛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요약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장은 그가 유대 땅 베들레헴, 즉 다윗의 고향이며,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께서 나사렛 사람이라 불리며 고난 받고 천대받는 이들과 함께 하신 것을 요약해서 보여줍니다. 즉 이 말씀은 예수님 인생의 한 단면으로 전체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

그래서 오늘 성탄 축하 주일 아침 아기 예수의 출생과 그의 초기 삶을 통해 그분의 생의 한 단면을 보면서 성탄의 의미를 새롭게 보기를 원합니다. 베들레헴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렇게 살려면 뭐하러 살어!”라고 말할 때 예수님은 살아야만 했고, 살기 위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을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또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향해 갈릴리 나사렛으로 찾아가셨습니다. 그들은 천대받는 사람들이었고, 또한 주님께서 친히 겪으셨던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미라아 여인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는 아마도 그런 여인을 보면서 이렇게 말할 지 모릅니다. “그렇게 살려면 뭐하러 살어!”라고요. 그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정식 자기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매일 남의 눈을 피해 다녀야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후 자기 동네 사람들에게 가서 말하기를 “내가 행한 (부끄러운)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이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그것이 무슨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우리가 이 여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려면 뭐하러 살어!”라고 말할 때 그들은 그 안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그 안에서 삶의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증거하며 놀라운 삶의 변화를 이루어갔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방향

본문은 예수님의 사역의 방향을 보여줍니다. 그분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셔서 갈릴리 나사렛으로 가셨습니다.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설득시키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냥 갈릴리 나사렛으로 가셨습니다.

오늘날 유럽에 가면 문을 닫는 교회들이 많다고 합니다. 유럽뿐이겠습니까? 오늘날 미국도 그런 뒤를 밟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복음이 지나간 많은 땅에서 교회들이 문을 닫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하는 생각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마음을 이미 닫아버리고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더 이상 나오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전보다 더 화려한 설교로 그들의 마음을 설득하려고 하실까 하는 의문이 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천국을 떠나서 이 땅, 고난 받는 땅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이 성탄입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셔서 갈릴리 나사렛으로 가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삶이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성탄의 놀라운 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즐거워하며 축하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런 엄청난 사건, 이런 엄청난 은혜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을 찾아가신 예수님을 보면서 오늘 우리는 주님께 무엇을 구해야 하겠습니까? 위로와 소망과 용기와 부요함과 영광을 구해야겠습니까? 아니면 오히려 조금이라도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려는 마음을 구해야겠습니까?

아기 예수의 탄생, 이 놀라운 성탄은 오늘 우리들에게 여전히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과연 성탄은 우리에게 무엇을 던져주고 있으며,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제 그 질문에 우리가 답할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성탄의 계절, 조용히 주님 앞에 서서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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