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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강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2천 년 전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또 장래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기간입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살피고,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지를 깨닫고 성탄을 좀 더 목적 있게 보내는 시기입니다. 우리는 대강절 기간 동안 세 번에 걸쳐 호세아서의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성탄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별명은 사랑의 선지자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한 결혼을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에게 고멜이라는 창녀를 데려와서 결혼하도록 했습니다. 호세아의 부인 고멜은 세 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첫째와 셋째는 아들이고, 둘째는 딸이었습니다. 둘째의 이름은 로루하마(딸, 뜻: 긍휼이 없다.)이고, 셌째의 이름은 로암미(아들, 뜻: 내 백성이 아니다)였습니다. 고대 시대에는 그렇게 센세이션을 일으킬만한 일이 많지 않았을 때에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십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들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해할 때는 아버지 호세아가 지어진 이름입니다. 이 이름을 불려질 때마다 사람들은 분명히 생각했었을 것입니다. ‘저 아이들은 틀림없이 호세아의 자식이 아닐거다.’ ‘그래서 호세아가 화가 나서 그렇게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대개 이런 소문은 매우 빠르게 퍼져 나갑니다.

이 상황을 그려볼 수 있겠습니까? 호세아는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창녀 고멜과 결혼을 했고,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 자녀의 이름을 볼 때 그 자녀들은 분명 호세아의 자녀가 아니라고 확신하게 합니다. ‘이제 호세아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겠는가?’ 하고 사람들은 호세아의 입에 주목하고 있을 것입니다. 즉 사람들은 호세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들을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백성들은 호세아가 자기 자식에 대한 변명이나 그렇게 이름을 지은 이유를 듣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호세아의 선포는 묘한 역설을 가져옵니다. 그런데 호세아 선지자가 말하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려질 것이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놀랍게도 호세아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 것인지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사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니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선포는 호세아 자신에 관한 말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 영적 사생자가 된 모습,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방신의 자식이 되어 버린 현실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2:1) 라고 말씀합니다. 너희 백성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선포입니다.

기가 막힌 역설과 반전을 가져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마음을 열게 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호세아 선지자의 개인사를 보면서         가십거리로 삼고, 즐거워하고, 남 이야기 하는 재미로 밤 새는줄 모르고 있었는데, 사실 그 이야기는 자신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사생자였습니다. 족보를 알 수 없는 백성이 되어 버렸습니다. 스스로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백성들의 마음을 열어 놓고,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름을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이 선포는 4장부터 10장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과 죄와 백성들의 죄를 함께 번갈아가며 지적합니다. 우상숭배를 경고하고, 하나님을 떠난 그들의 영적인 음란을 심판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왕궁의 잦은 반란, 반역, 쿠데타를 심판합니다.

본문의 위치(호6:1-6)

그런데 그렇게 계속 반복되는 심판의 선언 한 가운데 본문이 놓여있습니다. 특히 1-3절의 말씀은 아주 특별합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말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1절).  

여기서 우리는 아주 대조적인 두 가지 모습을 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호세아 4장부터 10장까지 계속해서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번 심판은 영원한 사망입니다. 누구도 그분 앞에서 심판을 받고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4장부터 10장 중간에 오늘 말씀이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당신의 백성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의 은혜를 구하며 여호와의 치유와 싸매시는 은총을 사모하는 것을 그려줍니다.

엄밀하게 보면 이것은 모순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서를 통해서 사정없는 심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여호와의 은혜를, 용서하는 은총을, 새벽 빛 같이 어김없이 베푸시는 은혜를 간구하기를 기대합니다.

1절을 잘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합니까? 여호와께서 무엇 때문에 우리를 찢으셨으며, 또 그가 무엇을 근거로 우리를 낫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를 찢으신 것은 조금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들의 죄 때문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우리를 찢으신 여호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면 죄는 조금도 타협하거나 용납하지 못하시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근거로 우리를 도로 낫게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무엇을 근거로 우리를 치신 분이 다시 싸매어 주시겠습니까? 무엇을 근거로 2-3절의 고백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쉬운 고백이 아닙니다. 그냥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이 모순된 선포 사이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모순된 선포의 간격을 무엇이 메꾸어 주고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입니다. 누군가가 그 죄의 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는 법입니다. 누군가가 값비싼 죄의 값을 지불할 때만이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말씀 안에서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갖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 중에 갑작스럽게 끼어든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라는 상충된 흐름을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상충된 흐름 안에서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봅니다. 그것이 바로 메시야의 도래였습니다. 물론 그것을 그들은 금방 깨닫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긴 세월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들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장래에 보내실 메시야를 통해 성취될 약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세 가지 말씀(권면)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첫째는 여호와께로 돌아갈 때 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1절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말씀합니다. 본문은 아직까지 주님의 오심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실 것을 약속하는 말씀입니다. 그 일이 아니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그 시대에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지만 그 가운데서도 삶의 길, 생명의 길을 찾고 갈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선지자의 선포를 깊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 말씀이 주는 의미가 무엇을까를 다시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얻은 답을 얻었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갈 때 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 답을 아직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우리 인생의 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1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진리는 밖에서는 알 수 없습니다. 진리는 그 안에 들어가 봐야 깨닫게 됩니다. 진리는 우리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진리는 그 진리 안에 들어가서 진리에 순종하고, 진리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 그것이 진리인지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역사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탄이라고 말하고, 또 성육신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오신 사건입니다. 그분이 진리로 우리에게 오신 사건입니다. 우리가 그분께로 나아가지 못할 때 그분이 친히 먼저 우리 몸을 입으시고 우리의 모양으로 이 땅으로 내려오신 사건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탄절을 통해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 성탄에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다른 길에서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 성탄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세상에 즐거움과 한 해를 보내는 연말의 분위기, 그리고 나아 한 살 더 들어간다는 신세 한탄만 해가지고는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천국으로서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누릴 수 없습니다. 천국은 저 세상에 있기 이전에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천국을 누리고 구원 받은 자로 살지 못하면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절대로 죽은 후의 사건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오늘의 문제입니다. 오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절대로 하나님을 밖에서 이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분을 알려면 그 분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처럼 우리는 그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즉 여호와께로 돌아갈 때 그분을 알고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는 여호와를 알아야 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알자고 선포합니다. 여호와에 대해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무조건 여호와께로 돌아갈 수도 없고, 또 여호와께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분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우리는 다시 물러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그 때 그들이 알아야 할 여호와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은 그분에 대해 말씀하기를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루 해가 지나 밤이 어두워지고, 캄캄한 밤이 지나고 나면, 깊은 밤의 시간을 흘러간 후 어김없이 새벽 빛이 떠오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지금 하나님을 그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변함없으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그런 하나님, 새벽녁에 태양이 떠오르듯이 그렇게 어김없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바로 그런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우리는 이 말씀에서 변함없으신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변함없으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그분은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갖는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창조 능력을 소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창조의 목적을 끝까지 성취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을 창조하신 분은 세상을 없게도 하시고, 또 있게도 하시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라면 그분은 분명 창조의 목적을 기어이 성취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창조가 인간의 죄로 인해 방해받거나 취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 목적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창조는 바로 구원의 역사를 통해 성취됩니다. 구원은 인간으로 인해 깨어진 창조를 다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재창조의 과정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인해 망가신 세상을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그분은 당신의 아들을 내주실만큼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시고 그 일을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사랑과 창조의 회복 역사 앞에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 3절에서 선지자는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우리가 하나님을 말씀을 붙들고 가만히 묵상하고 그분을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개인의 성경공부와 묵상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이 시대는 영적으로 너무 혼탁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계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이러한 신비로운 계획과 섭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알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호와를 깊이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성탄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 의미는 무한합니다. 그분의 출생과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보여주는 복음의 신비, 진리의 놀라움을 우리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을만큼 놀랍습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그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새벽 빛 간이 어김없이 나타나시는 하나님, 언제 어느 때나 변함없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 창조와 구원의 과정을 통해 당신의 목적하신 바 구원의 역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알고 그분 앞에 나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무한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하나님 앞에 설 때만이 우리는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분 앞에 나아갈 때만이 우리는 공의로울 수 있습니다. 그 앞에 나아갈 때만이 우리는 가장 정직할 수 있고, 가장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분을 깊이 알아감으로 그 안에서 풍성한 누림과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인애를 알아야 합니다.

6절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보다 인애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인애는 히브리어 “헤세드”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헤세드”라는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때 쓰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입니다. 이 ‘헤세드’는 하나님의 사랑의 여러 측면을 모두 포괄하는 매우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헤세드 때문에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은 헤세드의 사랑 때문에 죄악으로 더렵혀지고 깨어진 인간을 다시 회복하시고 있습니다. 그분의 헤세드는 그분의 사랑과 열정을 설명해 주며, 그분의 전능하심과 구원의 계획의 이유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결국 인간을 구원하셔서 그분의 헤세드를 나누기 원하십니다. 당신이 지니신 그 사랑, 당신이 가지신 그 열정과 사랑, 은혜와 나눔, 능력과 자비 등을 모두 함께 우리에게 나눠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인애, 즉 헤세드를 더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교는 다른 하나(제사)를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제사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사랑, 인내, 헤세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가지고 계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헤세드이지, 제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결론

이 말씀을 앞의 말씀과 다시 연결해 봅시다. 첫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지 않으면 세상에서 우리는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그분께로 나아갈 때만 우리는 인생의 참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여호와를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의 목적을 구원이라는 역사를 통해서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의 그 구원의 목적에 참여하게 됩니다. 자! 이제 세 번째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애를 아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헤세드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헤세드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가장 궁극적인 목적을 정의한 것입니다.

제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이 직접 구약에서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던 그 길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길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목적하신 바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는 삶을 우리가 누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헤세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헤세드의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놀라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사랑을 잘 모릅니다. 우리는 이런 은혜에 대해 상상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그 혼탁한 시대에도 이 말씀을 던져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그 사랑을 모르고, 이스라엘은 멸망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이스라엘의 완전한 멸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실패의 자리에서 당신의 구원을 성취하셨습니다.

호세아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도 그 말씀이 주는 은혜의 역사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북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놀라운 호세아의 선포를 들으면서도 그 은혜의 역사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역사는 근본적인 면에서 볼 때 인간의 실패에서 시작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에게 여전히 그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호세아 선지자가 예수님이 오시기 훨씬 전에 산 사람이지만, 이미 오신 예수님을 보면서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들보다 그가 더 크게 기뻐했고, 더 큰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상상을 할 수 있습니까?

물론 이런 말씀을 들어도 돌아서서 자기 삶을 보면 수많은 문제 안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 머리 아프게 하는 일들,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암담한 현실들, 이런 상황을 앞에 놓고 우리는 무엇을 바라봐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어려울수록, 힘들수록, 암담할수록 더 정신을 차리고 그분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 앞에 나아갈 때만이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창조와 구원의 능력을 가지시고 우리 인생을 인도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가장 높은 차원의 헤세드의 사랑을 우리로 하여금 누리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답을 얻고, 주님으로부터 삶을 인도받으며, 그분 안에서 가장 큰 사랑의 은혜를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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