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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츠빌한인교회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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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줌마가 택시를 탔습니다. 그런데 자신도 지금 어디로 가는지를 몰랐습니다. 택시 운전사에게 어디로 가자고 말을 하긴 했는데 언니 집으로 가자고 했는지 동생 집으로  가자고 했는지 생각이 안 났습니다. 그래서 앞에 앉아서 운전하는 아저씨를 건드리면서 ‘아저씨! 내가 언니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까? 동생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때 운전수가 뒤를 돌아보면서 그러더랍니다. 손님 언제 타고 계셨어요?’지금 우리는 바른 목적을 향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디로 가고 있나요? 언니 집으로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동생 집으로 가고 있습니까? 많은 경우 일단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가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부터 남전도회 주관으로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을 가지고 경건서적 나눔의 시간을 갖습니다. 현재 미국에 성장하는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성경적으로 자라가고 있는 교회들 중에 하나는 바로 이 책을 쓴 Rick Warren 이라는 목사님이 사역하는 Saddleback Church라고 생각합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은 이 책이 주는 영향력 때문이 아니라,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성경적이고 균형잡히 신앙관과 세계관 때문에 21C postmodernism 시대에 빛을 던지는 놀라운 책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남전도회에서 하는 ‘경건서적 나눔의 시간’에 함께 하는 의미로 주일 예배를 통해 6주간 동안 동일한 주제로 온 성도님들이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경건서적 나눔의 시간에 참석하지 못하시는 분들이라도 이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은혜를 같이 나누시기 바랍니다.

지난 해 1월호 가이드포스트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Colorado Springs에 살고 있는 Steven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전기공이었고, 교회의 장로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매월 하는 당회를 마치고 뿔뿔이 흩어질 무렵 집에서 교회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를 받은 Steven은 아내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없는 사이에 20대 흑인 남자에 의해 겁탈을 당했습니다. 두 아이들을 잠재운 후 자기 방에 들어와 잠자리에 들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 한 남자가 들어와 목에 칼을 들이대고는 저항하면 잠자고 있는 아이들까지 해치겠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그 남자가 20대쯤 되는 흑인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총명하고 창의적이고 사교적이었던 이 부인과 그 가정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굵은 자국을 남겼습니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몇 번이고 그 상황을 설명해야 했던 부인의 고통, 병원에서 받아야 할 여러 가지 테스트들, DNA 검사, 매독, 임질, 성병검사, 등 긴장된 시간들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그 후로도 에이즈 검사를 위해 6개월 동안 병원을 다녀야만 했습니다. 분노가 이 가정을 뒤엎었습니다. 아내를 범하고 상처를 입힌 그 괴물 같은 인간에 대한 분노, 신체적으로 오는 충격 장애, 밝고 명랑했던 아내가 변해가는 모습,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파티를 열곤 했던 아내가 이제는 친구들마저 피하고 있는 모습, 정말 견디기 힘든 상황들이었습니다. 더욱 더 고통스러운 것은 부인이 얼마 후 이 사건으로 인해 임신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이 가정은 어떻게 되며, 이 부인의 태중에 있는 아이의 운명은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계획 없이 태어날 아이, 아니 가장 악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평생 잊히지 않을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과정에서 태어날 이 아이의 운명은 누가 책임질 수 있습니까? 가장 불행한 방법으로 태어나게 되는 이 아이는 이 땅에서 생존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까? 한 순간 괴한에 의해 겪는 부인의 고통과 이로 인해 찾아오는 가정의 어두운 그림자는 과연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요? 도대체 이럴 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 것입니까?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 두 번째 chapter에 보면 ‘우리의 출생은 실수도 불운도 아니며, 우리의 삶 또한 우연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혹 부모님은 계획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계획하셨다’고 쓰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은 어떤 계획을 가지시고 우리를 낳으셨을까요? 저는 자라면서 정말 저 자신에게 이런 질문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왜 태어났나?’하는 질문입니다. 그런 질문은 그리 쉽게 답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장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더 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왜 존재하나?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하나님은 나를 왜 만드셨을까? 대답 없는 이런 질문들은 저 자신을 더욱 더 무기력하게 느끼도록 했습니다. 믿음은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믿음에 대해 할 말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 생각들은 저를 매우 힘들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이렇게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려고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아버지와 어머님 집을 택하셨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계획하지 않으셨을지라도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저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거기에는 목적이 있고 사명이 있었습니다. 저를 샬롯츠빌한인교회로 보내는 목적도 또한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참 많이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이 보내신 목적에 합당하게 사역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저를 이 교회로 보내는 목적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목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성경은 에베소서 1장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43장 21절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인간 모든 사람 하나하나에 대한 세심한 계획과 목적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목적에 합당하게 살라고 하십니다. 거기에 생명이 있고, 거기에 능력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가정의 이야기를 다시 계속합니다. Steven이라는 사람의 부인은 괴한에 의해서 겁탈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아기까지 가졌습니다. 교회 목사님이 이 소식을 듣고 집에 찾아왔습니다. 목사님은 그들에게 아이를 입양시킬 준비를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존 부부가 어떨지 의향을 물었습니다. 그 가정은 정말 아름답고 신실한 가정이었지만, 오랫동안 아이가 없어  입양을 계획하고 있던 가정이었습니다. 부인은 선뜻 대답할 수 없었지만, 한 육 개월쯤 지나서 마음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이제 아기를 그들에게 보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존 부부를 초대해서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했습니다. 존 부부는 너무 기뻐하고 좋아했습니다. 기꺼이 입양할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본 부인은 다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이 작은 생명을 어떻게,,,,” 아버지의 범죄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생명체가 눈에 보이는 듯했습니다. 우리들의 죄에 전혀 물들지 않은 생명체, 마치 창세 때처럼 깨끗하고 순결한 새로운 생명체가 그의 몸 안에서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인은 얼굴을 벽에 대고 울고 있습니다. “여보, 난 내 아기를 포기할 수가 없어요!”

결국 부부는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 아이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그러므로 그 아이를 그냥 그렇게 버려질 수 없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아이는 그의 과거와 출생의 사요에 의해 지배당하게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부부는 그 아기를 자기들의 자녀로 키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백인 가정에 태어난 혼혈아기, 상상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한 신실한 가정을 통해서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 아이가 여덟 살이 되면서 부부는 이 글을 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실 수 있으시나요? 우리는 이 아이가 왜 이런 방법으로 이 땅에 태어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의 삶의 목적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아이도, 그렇게 불행하게 태어난 아이도 다른 아이들과 동일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살도록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창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전에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흠 없게 하시고, 그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기 위해 지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습니다. 또한 복을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모든 생물을 다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목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자기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의 풍성함과 같이 누리도록 의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도록 복을 주셨습니다. 모든 생물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이 크고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죄로 인해 아프고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입니다. 쓸모없는 그릇처럼 버려진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고 절망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런 일들을 우리 자신과 이웃에서 볼 때마다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 도대체 왜 이래야만 합니까?’ ‘주님 도대체 나의 인생은 이런 험한 골짜기를 걸어야 합니까?’ 왜 나의 인생에 이런 일들이 있어야 하냐고 질문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인생의 길을 찾습니다. 성공하는 길을 찾고, 남보다 더 앞서가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몰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성공을 위해 뛸 것을 요구합니다. 목표를 설정하라고 합니다. 자기의 장점을 최대한 개발하라고 말합니다. 자신을 훈련하라고 합니다.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오히려 우리들에게 그 어떤 것들보다도 먼저 우리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도록 하십니다.

미국의 한 기자가 아르헨티나의 한 정치지도자를 만났습니다. 국민들로부터 가장 추앙 받는 그 지도자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이 기자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유럽의 백인들이 먼저 정착한 곳은 북미가 아니라 남미였습니다. 지하자원과 물도 북미에 비해 부족하지 않고, 기후도  좋습니다. 그럼에도 왜 북미가 남미보다 잘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기자는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지도자의 웃으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남미는 스페인사람들이 황금을 구하러 찾아온  땅입니다. 그러나 북미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을 위해 찾아온 땅입니다. 여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목적을 찾아온 그들의 인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황금을 쥐어줘도 부요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믿음의 승리를 위해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으면서도 달려온 이들의 인생이 오늘날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지를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일그러졌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자신의 죄와 허물로 인해 보이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위대한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세속적이고 천한 것에서 참다운 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고 몸부림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모든 인간들은 다 실패했습니다. 유수와 같은 인생, 화살 같은 인생, 빠르고 빨리 지나간 인생을 고백하면서 아쉽게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을 우리는 보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영원한 세계에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의 목적을 기억하고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영생의 삶을 누리며 얼마나 아름다운 생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그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감으로 우리의 인생에 새로운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앞으로 다섯 주간 동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목적을 주셨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갈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경건서적 나눔의 시간’에 참석하시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눌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발견하는 진정한 내 삶의 목적이 되기를 원합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 무엇인지 깨달음으로써, 우리 각자를 향해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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