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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나온 사진에 나온 여인은 ‘와리스 디리’라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소말리아에서 유목민의 자녀로 태어나서 세계적 패션 모델이 된 현대판 신데렐라입니다. 이 여인은 한 번도 동네 밖을 나가본 적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낙타 다섯 마리를 받고 60대 노인과 결혼시키려는 것을 안 순간 그녀는 목숨을 걸고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영어도 못하고, 심지어 버스조차도 처음 타보는 이 소녀는 소말리아를 거쳐 영국으로 뉴욕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때로는 악마 같은 사내들을 때려눕히기도 하고,  여권을 위조하기도 하고, 위장 결혼도 거침없이 했습니다. 그녀는 뉴욕에 와서 가정부 생활을 거쳐 맥도널드 점원으로 일하던 중 유명 사진작가의 눈에 띄어 패션모델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점점 더 유명해지면서 슈퍼모델로 활동하게 되었고, 결혼해서 아기도 낳고, 집도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많은 패션모델들 중의 하나로 머무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사막을 건너온 그녀는 다시 사막으로 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번에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고통 받는 여성들을 위하여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여성 성기 절제라는 참혹한 비밀을 고백해 세계적 인권 이슈로 만들어 내고 유엔 인권 특별대사로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무엇이 이 여인의 삶을 이토록 강하게 이끌고 갔을까요? 무엇이 이 여인의 삶을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요? 처음에는 살아야겠다는 강한 열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60대 노인과 결혼함으로 내 인생을 내던지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것보다도 못한 길이라고 생각하고는 알지 못하는 곳을 향해 무작정 넓은 세상을 행해 나아갔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신은 이렇게 나왔지만, 아직도 여전히 소말리아 그곳에서 고통 받는 다른 여인들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녀의 사랑은 자기 민족의 여성들을 향한 강렬한 열망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삶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사랑 때문에 자신을 남을 섬길 수 있는 모습입니다. 자신과 같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 안에 끌어 오르는 무엇인가를 느끼면서 다시 고향 땅 아프리카의 땅을 밟는 와리스 디리의 모습에서 우리는 참된 성도가 걸어야 할 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율법의 문제를 함께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본문에는 율법이라는 말이 무려 21회나(같은 의미를 가진 다른 표현을 포함해서) 있습니다. 이방인에게는 양심이 율법의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실 때는 사랑 때문에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광야를 거쳐 가나안으로 올 때 남자만 60만 명이 넘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질병과 오염, 그리고 전염병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노예생활에 길들여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질서란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를 통과하기 위해서 그들에게는 율법이 필연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생명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이방 나라와 인접해서 살아갈 때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또 건강하게 살기 위해 주신 계명이 바로 율법이었습니다. 사랑으로 인해 주신 것이었고, 그 율법 이면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알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키다 보니 율법 자체에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생활을 40년간 했습니다. 그 과정 중에 모세가 구스 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이 일로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모세의 리더십에 도전한 것입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미리암이 문둥병이 걸렸습니다. 이 일로 모세가 다시 기도합니다. 하나님! 누이 미리암이 잘못을 했다고 하더라도 문둥병이 걸린 것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고쳐주십시오 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미리암을 진 밖에 가두었다가 일주일 후에 들어오게 합니다. 이것이 율법입니다. 레위기 13장에 보면 문둥병이 걸리면 칠 일간 격리시키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이었으며, 이것을 다분히 치료를 위한,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행진하지 않고 진에 머무르며 미리암의 근신기간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을 생각하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민족 전체가 함께 근신하는 기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징계 속에 비친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즉 율법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그 사랑을 기억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그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율법은 살리기 위한 것이지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선한 것이고, 거룩하며 의로운 것이라고 본문은 말씀합니다(12절)

그런데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그리스도인에게 죄를 이기는 힘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율법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예수를 처음 믿을 때는 기쁘고 사랑의 마음이 있고 뭔가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성령의 이끄심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감동이 사라집니다. 사랑의 마음도 없어져갑니다. 교회에서 맡은 책임은 더 많아지지만, 감동과 자발성은 줄어듭니다. 그래서 율법은 한계가 있습니다. 율법은 절대로 우리에게 바르게 살도록 힘을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율법을 지키면 그것은 은혜요 사랑이며 감사할 일이지만,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알아가거나 하나님께 더 나아가게 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몸이 약할 때 우리는 자신의 몸을 의심해 봅니다. ‘왜 내 몸이 이러지’ ‘왜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지’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 지나면 더 나아지겠지 하면서 생활하게 되지요. 하지만 병원에 가서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면 그동안 있었던 힘조차도 없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주어진 생명조차도 더 단축시키게 됩니다. 즉 우리가 어떤 사실을 안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에게 힘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들춥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결국 낙심과 절망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 힘을 얻게 위해서는 부득이 하나님께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역사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율법이 주는 모든 양심의 가책과 죄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즉 즉 처음 사람들이 체험했던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야 합니다.

1절부터 3절의 말씀은 바로 이 진리를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말하면 율법은 사람이 살아있을 때만 주관합니다. 즉 남편 있는 여인이 남편이 살아있을 때에는 남편의 아내로 살아야 합니다. 남편이 살아있는데도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이런 여자는 간음한 여자가 됩니다. 하지만 만일 남편이 죽었다면 여자는 다른 남자에게 간다고 해서 간음죄가 되지 않습니다. 율법은 우리의 남편이었습니다. 그동안 율법은 우리를 지배했습니다. 율법대로 살지 못할 때 율법은 우리에게 죄인이라는 가책을 느끼게 했고, 죄인이 감당해야 할 짐을 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율법에 대해 죽었습니다. 남편이 죽은 것이 아니라 내가 남편(율법)에 대해 죽었습니다. 그래서 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나니” 어떻게 우리가 죽임을 당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즉 율법이 요구하는 죄의 값(사망)을 치름으로 우리는 율법에 대해 죽은 자가 되었고,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율법과 상관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율법을 무시해도 됩니다. 우리가 율법에 대해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이름으로 태어난 존재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신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성도가 되었습니다. 6절입니다. “율법에서 벗어나서 ,,,,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긴다”고 말씀합니다. 즉 성령의 힘으로 사랑 때문에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처음 만드실 때의 모습으로 우리를 돌리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의 힘으로 살게 하십니다. 더 이상 우리의 삶의 동기는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을 로마서 5장 5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이 부은 바 됨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경험하고 감격하며 살아갑니다.

율법은 결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의무감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합니다. 한 불량 청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쁜 버릇과 습관들, 기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모가 그를 설득해도 안되고 선생님이 그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애를 써도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남학생이 여학생과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남학생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옷 입는 모습이 변하고 머리를 단정히 깎고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실제로 화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엘리나라는 78세 된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의 평생 소원을 담배를 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50년 간 담배 끊는 크리닉에도 가 보고 ,별별 노력을 다했는데도 담배를 못 끊고 어느새 78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엘리나 할머니가 79세 된 제이슨이라는 노인과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제이슨이라는 노인이 말하기를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결혼하기를 원하는데, 한 가지 때문에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당신이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같이 살 생각을 하니 한심하다”고 했답니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그래요? 그러면 내가 끊지요”라고 하며 그 순간 담배를 끊었답니다. 할머니는 이 기사의 마지막 줄에 “나는 이 일을 통해 사랑의 힘이 의지의 힘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기술해 놓았습니다. 의지나 노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사랑은 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얽매고 있는 율법의 사슬을 끊으셨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율법보다 더 어려운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산상수훈’(마태복음 5 - 7장)이라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을 보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보다 더 강한 명령들이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나오는 십계명에 제 7계명은 ‘간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이미 간음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산상수훈은 정말 지키기 힘든 요구사항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거기서 마치지 않으시고 마태복음 5장 20절에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이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것을 성도들이 어떻게 지킬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율법에 대해 죽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더 이상 우리를 얽매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율법을 더 이상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율법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사랑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로마서 5장 5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부은 바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해야 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애씀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불량 청소년이나 78세의 할머니의 삶 속에서 본 것과 같은 사랑의 힘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 부은바 되고, 그 사랑이 우리를 통해 일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따라 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앞서 언급한 불량 청소년과 78세의 할머니와 같은 삶의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사랑 받은 자의 모습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다면 우리는 정말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갈 조건으로 율법을 요구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받는 존재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변화되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산 사람을 우리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테레사 수녀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성 프랜시스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생각할 때 그런 삶은 너무나 많은 희생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늘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면 그들이 얼마나 감격과 기쁨으로 그런 사람을 살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런 삶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감격하는 삶을 살아가고, 그런 감격과 기쁨으로 다시 주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우리 주님은 원하십니다. 이런 놀라운 삶의 감격과 기쁨이 모든 성도님들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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