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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10;45). 이 말씀은 주님이 이 땅이 오신 목적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섬김을 받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문둥병자에게 손을 내밀어 고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오천 명의 사람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시고, 예수님 주변에 있는 각색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주님은 잠시도 쉬지 않으실만큼 바쁘고 분주한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좀 더 깊은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가복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흐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까지에서 예수님은 주로 갈릴리에서 사역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0장에서부터 예수님은 남쪽으로 내려오셔서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32절에 오면,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예수님은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모습이고, 제자들은 무엇엔가 놀라고 있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움에 싸여 있습니다.

왜 제자들과 따르는 자들은 놀라고 있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마도 33-34절에 답이 있으리라고 보여집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제자들과 따르는 자들이 두려워하고 놀라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분위기를 이해하고 난 후 이어지는 본문을 볼 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 야고보와 요한이라는 예수님의 두 제자가 예수님께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이 두 제자가 그냥 그렇게 욕심을 가지고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를 요청했을까요? 이 두 제자의 요청을 단순히 그렇게 몰아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35절을 보면, 두 제자는 이렇게 예수님께 말합니다.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무엇이든지’ 이 ‘무엇이든지’가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의 뉘앙스는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선생님, 저희가 선생님께 구할 것이 있는데, 왜 그런 것을 구하느냐고 묻지 마시고, 그냥 저희를 믿고 그대로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하는 말입니다.

그럼 두 제자가 이런 요청을 주님께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가지 분명하지 않은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제자들의 입장에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반드시 죽을 것이다고 하는 뜻으로 듣기는 쉽지 않습니다. 결국 주님께서 당신의 마음 속에 있는 어떤 두려움이나 안타까움을 표출하시지는 않으시지만, 아마도 이러한 위기가 닥칠 것인데, 이를 잘 극복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는 뉘앙스가 보이고, 예수님의 말 이면에 그런 의미를 담아서 이해하기가 쉬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 두 제자는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제자는 그런 이유로 주님께 조만간 당신의 나라를 세울 때 자신들을 주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주님께서 어떤 위협을 당하신다고 하더라도 우리 형제가 주님을 위해 몸바쳐 싸울 것이라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두 제자가 그런 생각으로 예수님께 중요한 두 자리를 요구했을 것이라는 근거를 더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뢰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보아너게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 보면, 이 두 제자가 꼭 그렇게 행동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에서 사역하시다가 사마리아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데, 사마리아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과 그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해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때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진 두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렇게 예수님께 제안합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엄청난 말이지 않습니까? 자기들이 그 지역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하늘의 불을 내려 싹 쓸어버리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성정이 얼마나 불같은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들의 별명의 이유를 알만한 내용입니다.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에는 요한이 사랑을 많이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부드러운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저돌적인 모습의 소유자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두 제자가 예수님께 주의 나라에서 자신들을 하나는 주의 우편에, 다른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하는 요청은 분명 선한 의도였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위기에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자신들이 스승을 위해서 이 한 몸 바쳐서 희생하겠다는 의지가 들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거사라도 행할 것 같은 마음을 가진 표현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두 제자의 제안은 높은 자리를 탐낸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욕심으로 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두 제자는 아마도 바르지 않은 동기로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을 것을 요구했다고 흔히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약 두 제자가 위에서 발견한 것처럼 주님을 위해 일하려고 했다면, 그들이 그런 바른 이유, 혹은 명분을 가지고 행하는 악한 일은 욕심으로 구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바른 동기로 악을 행하는 경우, 그 한계를 그을 수 없습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가 극단적 성향을 갖게 되면 가장 치열한 전쟁을 가져옵니다.


주님께서 45절에 주신 결론은 이러한 두 제자의 요청에 대한 결론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말씀은 두 제자의 제안에 대한 거절로서의 대답이었습니다. 인자는, 즉 예수님은 그렇게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그런 힘으로 정복하는 나라가 아니라 섬김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두 제자의 요구를 생각해 봤을 때 아주 절박한 답변입니다. 두 제자가 그 길로 그대로 가게 한다면, 그리고 그들에게 정말 큰 힘을 갖게 해 준다면 그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게 될 지 모를 상황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주님의 이 말씀은 아주 긴급하고 중요한 답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섬김의 의미는 그냥 단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오천명을 먹이시는 사건 자체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섬김다고 하실 때 그 의미는 세상의 권력과 힘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거절하고, 오직 섬기고 사랑함으로 사람을 세우고 세상을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목적을 위해 주님은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주님의 오심의 목적은 세상의 방법을 철저히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방법, 당신의 섬김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본문이 주는 말씀

그러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첫째, 본문은 하나님의 나라는 섬김을 통해 세워지는 나라임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제자들을 말씀으로 섬겼습니다. 밤낮 가리지 않고 환자들을 고치시고 치유하셨습니다. 문둥병자의 손을 잡고 위해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먹이셨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온통 가난하고 병들고 약하고 고난 당하는 자들이 들끓었습니다. 주님은 잠시도 섬김의 손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섬김은 세상의 방법을 부정합니다. 문둥병자를 고치신 주님의 모습을 잘 보십시오. 주님은 병자를 고치신 후 이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영광을 수단으로 선한 일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선한 일을 위해 세상의 명예나 권력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권력자들은 이 길을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낮아지고 겸손해지고 섬기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울이라는 이름의 청년이었을 때가 그렇습니다. 이 청년은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온 천지를 다니면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가두고 죽이는데 앞장 섰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 선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주님의 나라는 섬김으로 세워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다른 모든 것을 부정하고 거부합니다. 세상의 집권자들은 그들이 가진 권력으로 사람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권세를 부립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을 섬김으로 세워갑니다. 그런 섬김은 때로 자신을 고난의 자리에 처하게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고난조차도 하나님의 나라를 아름답게 세우는 능력이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둘째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말씀은 권력이나 힘보다 섬김이 가지는 능력이 더 크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섬기는 나라입니다. 섬김으로 세워지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섬김이 권력이나 힘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렇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의 논리, 세상의 힘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셔도 우리는 사실 그 말씀을 우리의 심부 깊이 새기고 그렇게 살아가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섬김의 리더십은 사실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런 생각을 잘 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이런 생각을 잘 못합니다. 사람은 힘을 가지면 힘을 사용하고 싶어합니다. 칼을 쥐어주면 한 번 휘두리고 싶어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것을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좋은 사람이었고, 원래 겸손한 사람이었는데,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주어지면 마치 그것이 무슨 큰 벼슬이라고 한 것처럼 휘두르려고 하는 마음이 듭니다. 사실 사람이면 누구나 칼을 쥐어주면 한 번 휘두르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 유혹은 누구나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절대 그런 마음으로는 주님의 일이 성취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겸손과 섬김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누군가 믿음으로 잘 서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며 공동체에 어려움을 만들 때 딱 한 마디 해 주면 고쳐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대개는 그런 말로 사람은 고쳐지지 않습니다. 아주 큰 상처만 남기고 맙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주 오래 갑니다. 섬김이 진정한 능력입니다.


셋째, 본문은 섬김의 한계에 대해 말씀합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섬길 수 있겠습니까? 섬김의 한계는 자기 목숨을 주는 데까지입니다. 45절을 다시 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섬김의 한계입니다. 어디까지 섬길 수 있을까요? 어디까지 섬길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자기 목숨을 대 내어주기까지 섬기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은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는 데까지 섬기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좌우편 자리를 요구하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매우 큰 도전이었습니다. 두 제자는 전에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도전이었습니다. 세상이 공격을 해 오고 있는데, 그 앞에서 섬기라고 말씀한다면, 그리고 목숨을 내어놓는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 섬김이라고 한다면 과연 우리가 세상에서 기대하고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죽는 데까지 낮아진다면 그 죽음의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겠습니까? 만약 내 배우자나 자녀 앞에서 자신이 죽는 데까지 낮아진다면 그 자리는 어떤 자리이겠습니까? 만약 다른 성도의 험담과 공격을 받을 때 우리가 주님이 낮아지신 자리까지 낮아질 수 있다면, 그래서 그렇게 공격하고 험담을 하는 사람을 섬길 수 있다면 그 자리는 어디까지 가능하겠습니까?

주님은 당신 자신을 우리를 위한 대속물로 주시는 데까지 섬기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도 가능하겠습니까?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자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을 기억하십시다. 그렇게 섬기심으로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기억하고 감사합시다. 그 분의 섬김이 없으셨다면, 그 분이 자신을 대속물로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구원은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하며 감사한다면 주님께서 어느 순간 우리도 모르는 순간에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섬김의 자리로 내려갈 수 있는 은혜와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기대하며, 그런 삶을 소망하며, 주님의 영광을 맛보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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