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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Randolph Hearst라는 사람은 값비싼 그림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좋은 그림이 있다고 하면 세상 어디까지든지 찾아가서 그 그림을 손에 넣고야 말았습니다. 어느 날 정말 귀한 그림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그림을 찾기 위해 직원을 보내 세상 구석구석 그가 원하는 그림을 찾기 위해 출장을 보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 직원이 이 사람에게 달려와서 사장님이 찾고 계시던 그림을 찾았다고 하면서 그 그림은 “사장님, 그 그림은 사장님의 그림 창고에 있었습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창고에 있는 그림의 카달로그만 확인했어도 그는 그림 찾는 수고와 비용을 아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미 자기 소유로 가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찾다가 많은 시간과 세월, 비용을 소모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 네 가지 기도를 합니다. 네 가지 기도는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는 것,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 기업의 풍성함, 하나님의 능력의 크심을 알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각각 마지막을 “알게 하소서”라고 마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것들이 이미 하나님께서 에베소 성도들에게 주신 것인데, 이제 그 사실을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알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15-16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온 이들이지만, 사도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더 큰 은혜들을 깨닫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윌리엄 같은 사람이었는지 모릅니다. 이미 자기 그림 창고에 있는 그림을 찾기 위해 온 세상을 찾아다니는 어리석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여기까지 온 것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더 풍성한 삶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1.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다음 네 가지입니다.
    1)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2)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하소서.
    3)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이 얼마나 풍성한 지를 알게 하소서.
    4)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신 지를 알게 하소서.

오늘은 이 기도들 중 첫 번째 것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 기도는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이 기도를 보시고 혹시 실망스럽지 않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십니까? 하나님께 관심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을 알고 싶으십니까?

본문에 나오는 네 가지 간구를 보면 두 번째부터 네 번째 기도는 모두 성도의 삶과 관련이 있는 것이고, 첫 번째 기도만이 하나님에 대한 기도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이어 오는 다른 세 개의 간구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상관하지 않을 때 만들어지고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은 우상 숭배와 직접적으로 관련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무엇을 주시는 분으로만 규정하고 이해하게 될 때 하나님은 결국 신앙의 수단이 되어 버립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받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산 아래서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가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신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다른 신을 섬긴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 그분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냥 그들의 목적만 이루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반드시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분을 아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다마스커스로 가던 중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때 사울이 이렇게 예수께 질문합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이것이 사울이 최초로 예수께 질문한 것입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네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길에서 돌아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알자 그는 그가 가는 길이 잘못된 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금송아지를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를 건넜습니다.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대리자와 같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 금송아지가 바로 자신들을 그동안 인도하여온 신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오던 그 길을 그대로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내가 가는 길에 우선적인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합리화하려고 하기 전에 그분을 먼저 알게 되면, 그래서 사울이라는 청년처럼 “주여 누구십니까?”라고 물음으로써, 그분께 우선적인 관심을 가지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인격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게 하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입니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문밖에서 두드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본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특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문고리가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문은 반드시 안에서 열어 주어야 열려집니다. 주님은 결코 억지로 문을 열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강제로 당신의 뜻에 복종하도록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얼마 전에 말씀드린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즉 율법의 강제력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는 말씀과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인격적 관계를 맺기 원하시고,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문을 열기까지 문밖에서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원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얼마나 섬세하게 우리를 대하시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조물주이시면서, 피조물이 스스로 마음을 하나님께 줄 때까지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런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우리가 어떻게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15장 ‘사랑하시는 아버지’ 비유가 나옵니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돌아올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해서 아버지에게 받아 집을 나갔습니다. 밖에 나가서 허랑방탕하며 모든 것을 다 탕진한 후에 더 이상 밥 얻어 먹을 곳도 없자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돌아오는 아들을 아버지는 받아줍니다. 그것도 아주 기쁘게, 기꺼이 받아줍니다. 환영 프랭카드를 걸고, 송아지를 잡으며, 잔치를 열었습니다. 어떤 야단도 치지 않으셨습니다. 아들이 돌아온 것을 그냥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7절입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스스로 돌이켰다”고 합니다. 스스로 돌이켰습니다. 스스로 돌이킬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고, 아버지의 사랑이 그를 다시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강제력을 사용하지 않고 다만 당신의 사랑을 통해서 아들이 스스로 돌이키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기다리신 것입니다. 아들이 마음을 돌이키고 스스로 아버지께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인내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아버지가 아들을 참고 기다리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내로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강제하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피조물이 인간과 대화하고 소통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아들이 돌아온 후에 아들과 인격적 관계 안에 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잘못을 하거나 죄를 지면 벌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쉽게 벌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벌을 주시면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온 것이 결국 스스로 돌이킨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소소하게(?) 지을 수 있는 잘못들을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주일을 지키지 못한다든가, 다른 사람에게 험담을 한다든가 하는 일들에 대해 죄의식을 갖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벌하지 않으신다는 것과 그것이 죄가 아니라는 것은 다릅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집 나감에 대해 벌하지 않은 것은 그와 인격적 관계를 갖기 위함이지, 아들의 집 나감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용이 없어야 합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강압에 의해 자라가지 않습니다. 자녀는 부모와의 인격적 관계 안에서 자라갑니다. 풍성한 사랑을 받고 자랄 때 건강하게 자기 역량을 발휘하며 자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간해서 이런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우리는 먼저 전능하신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뭐든지 할 수 있는 분, 그래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면 뭐든지 해 주실 수 있는 분을 상상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유아기적인 하나님 이미지입니다. 어린아이에게 비쳐진 아버지의 가장 강력한 이미지가 바로 전능한 아버지상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못하는 것이 없는 절대적 권위를 행사하는 분으로 투영됩니다. 그러나 아이가 성장하면서 아버지를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 안에서 더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아버지의 지극히 작은 부분일뿐입니다. 그분은 너무도 크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그분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알 때, 그분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삶의 길을 발견합니다. 그분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참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아는 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을 아주 깊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삶을 더 깊은 은혜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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