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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성자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말씀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역이 우리를 선택하신 사역이었다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 즉 구원사역에 대해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을 7절은 아주 잘 묘사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은 복음서를 단 한 구절로 요약한 매우 중요한 말씀이며, 예수 그리스도서께서 행하신 사역을 한 마디로 표현한 말씀입니다.

7절에서 ‘속량’이라는 말은 헬라어 “아폴뤼프로시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 말은 “값을 지불해 자유케 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즉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즉 그의 피로 값 주고 속량하셨다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 사회에는 6백만 명 정도의 노예가 있었고, 그들은 도구처럼 취급받았지만, 때로는 노예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때 누군가가 그 노예에 대한 값을 지불하고 자유를 얻게 합니다. 당시 이런 문화적 상황에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셔서 자유케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성경은 성자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구원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구원은 우리를 자유케 하는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것입니까? 이에 대해 성경은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죄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세상과 사탄의 권세로부터의 자유를 얻었다고 말씀합니다.


첫째, 구원은 우리에게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가져다 줍니다.

갈라디아서 5:1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하셨습니다. 율법에 대한 이해는 쉽지 않습니다. 구약 시대,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에서 40년의 세월을 보낼 때 율법은 그들에게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율법이 없었다면 아마도 자멸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땅 광야에서 그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순종을 요구하는 율법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 율법은 그 효력을 상실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예수께서 보여주시려는 하나님의 나라의 그림자였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인도하는 몽학선생, 즉 초등교사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 율법은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배했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율법의 강제력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백성은 국가의 법의 구속력을 받습니다. 하지만 자녀는 부모의 법의 구속력을 받지 않고, 부모와의 관계에 지배를 받습니다. 법적 구속력은 강제력이 동원됩니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강제력이 아니라, 사랑과 신뢰에 의해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 나라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귀한 고백이며, 사실 그 자체로 아주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거기서 머물지 않았습니다. 신약 시대에 오면 예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바(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백성은 나라가 만들어 놓은 법의 지배를 받습니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녀는 부모의 말씀을 듣지 않았을 때 벌을 받지 않습니다. 단지 그 관계 안에 아픔이 있을 뿐입니다. 부모와 자녀는 절대 의무와 책임의 관계가 아닙니다. 자녀가 위기를 만나면 부모는 생명을 걸고 자식을 지킵니다. 부모가 건강을 잃고, 어려움을 당하면 자녀는 무한 책임을 집니다. 이것은 법적인 개념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이런 관계 안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법적인 관계가 아니라,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의무와 책임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과 신뢰의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율법적 관계 안에서는 결코 생명력 있는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생동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는 자원함이 있고, 기쁨이 있고, 기꺼이 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가 부모를 위해 하는 것은 기꺼이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생명의 역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율법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율법은 여전히 그대로 있습니다. 아니 구약의 율법은 신약에 와서 더 견고해지고, 더 철저하게 정의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는 신상수훈에서 구약의 율법을 재해석합니다. 거기서 보면 구약 십계명에는 살인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의 의미를 확대해서 해석합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 대하여 라가라고 욕설을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될 것이며,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언급하시면서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이렇게 더 철저하게 정의되어지는 율법을 하나님의 자녀가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해도 형제에 대해서는 용서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자녀나 부모는 아무리 큰 죄를 범해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또 아무리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고, 성적인 유혹에 노출된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 부모나 형제, 자매를 보고 그런 마음을 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형제이고, 자매이며, 부모이고,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한다는 이 말씀은 우리에게 훨씬 더 강한 삶의 동기를 부여합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진정으로 속량을 받은 자가 될 때 우리는 훨씬 더 큰 삶의 능력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어떻게 하나님께 충성을 하더라도, 그것이 율법적 동기에서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율법적 동기에서 살아가지 않고 율법으로부터 자유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을 받은 사람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더 잘 순종할 수 있고, 더 크게, 더 깊게, 더 넓게, 더 높게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 우리가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죄로부터의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자원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죄 용서에 대해 말씀합니다. 7절은 속량에 대해 말씀하시고는, 이어서 죄 사함에 대해 말씀합니다. 7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율법으로부터 자유, 즉 스스로 자원함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는 먼저 죄로부터 자유를 얻어야 한다. 왜냐하면 죄가 우리 안에서 사랑의 동기를 잃어버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강제력을 가지고 요구합니다. 죄는 우리 속에서 우리를 우리가 마땅히 가야할 길, 혹은 하고 싶은 길로 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속에 죄가 있는 한 우리는 우리 외부의 강제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로마서 7:21-23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즉 우리로 하여금 어떤 선한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죄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우리 안에 죄가 있고, 그 죄가 우리를 모든 선한 일을 하려는 의욕과 동기를 빼앗아 간다는 것이 성경의 초점이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있는 게으름, 나쁜 마음, 미움, 시기, 탐욕의 배후에는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죄로부터 자유하지 못하면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그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대신지셨습니다. 죄는 죄책감과 다릅니다. 죄를 지었을 경우에는 그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죄의 문제이지, 죄책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죄책감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죄책감은 감정의 문제이고, 죄는 법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죄책감보다 죄의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합니다. 죄는 객관적인 것이고, 명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이것을 심리학적인 방향으로 처리해 버렸다. 그래서 현대 사회는 죄의 문제를 처리하려고 하지 않고, 죄책감이라는 감정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내 죄가 무엇인가?” “내 죄가 무슨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보려고 하지 않고, 죄로 인한 불편함, 죄책감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만 합니다. 불편함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속받았다고 할 때 우리는 십자가의 고통을 보면서 위로를 받고 눈물을 흘릴 수 있지만, 그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죄로부터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오는 죄책감으로부터도 자유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죄 용서를 받고, 죄 용서의 확신을 가질 때 율법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고, 삶의 역동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회복이 있을 때 진정한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 우리가 율법과 죄로부터 자유(구원)를 얻은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탄의 권세와 세상으로부터 자유를 얻어야 한다.

갈라디아서 1장 4절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진정한 자유를 얻은 후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세상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이러한 공격은 우리가 진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인지를 의심하게 한다. 우리는 예수를 믿은 후에도 세상과 사탄의 공격에 노출됨으로 인해 우리 자신의 믿음의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으며, 율법으로부터 속량을 받고, 죄 사함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사탄의 공격에 노출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고, 또 우리의 자유가 진짜인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속량은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자유케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란 우리에게 자원함을 개발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종이기 때문에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녀로써 섬기는 것이다. 섬김은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안할 수 없어 하는 것도 아니며, 어디까지는 기쁨과 감사, 자원적인 동기로 하는 것이다.

또한 죄 사함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양이 되셔서 광야,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죄 사함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죄의 고소로부터도 우리를 보호한다. 우리가 더 이상 죄인이 아님을 보증해 주신다. 이런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담대히 주님의 자녀로 살게 하는 능력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이런 속량과 죄 사함은 어떤 조건에서 발휘될 수 있을까? 속량이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말은 율법의 강제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강압적인 요구가 있을 대에만 그렇게 살아가는 수동적인 삶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또한 죄 사함이란 우리 안에 있는 죄로부터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우리를 끊임없는 탐욕과 이기심, 시기와 미움 등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즉 남을 시기하고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그를 사랑하고 용납하고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자유는 어떤 상황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이런 자유, 즉 속량과 죄 사함은 우리가 율법적 속박을 받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과 남을 미워하거나 탐욕의 마음을 갖게 되는 상황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은혜가 필요한 자리에서 발휘될 수 있다. 즉 우리가 여전히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필요가 있는 삶의 자리에서 그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죄 용서, 죄 사함의 은혜는 우리가 여전히 죄책감을 갖고, 죄에 눌릴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우리를 세워주고, 우리를 잡아주며, 온전케 할 것이다.

그런 삶의 자리가 어디인가? 그것은 바로 세상의 공격을 받는 자리이다. 여전히 사탄의 권세가 넘보고 있는 삶의 자리이다. 그런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죄 사함과 속량, 즉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어 누리는 것이다. 율법적 구속, 즉 죄의 종이 되어 억지로 해야만 하는 삶의 양태, 삶의 구속에서 더 이상 구속받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그냥 삶이 저절로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과 같이 여전히 세상은 우리를 속박하고, 우리로 하여금 자원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게 할 수밖에 없는 삶의 자리, 즉 사랑할 수 없는 삶의 자리,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앞에 놓고, 그를 사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속량과 죄 사함의 은총과 은혜를 확인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필연적으로 세상의 공격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연적으로 사탄의 공격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어떤 공격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율법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탄의 공격은 우리를 육체적으로 탈진시키는 것이 아니다. 사탄의 공격은 우리를 영적으로 탈진하게 한다. 무엇인가에 대한 의무감, 무엇인가에 대한 강요된 억압으로 살아가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끌고 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승리할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주셨습니다. 값을 지불해서 자유케 하신 것입니다. 첫째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율법의 구속력, 강제력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자원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법적 구속력 때문에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행하는 것입니다.

둘째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것은 죄책감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닙니다. 죄의 문제는 심장 마사지가 아닙니다. 그냥 죄책감을 달래보려고 스스로 위안하려는 노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고 그냥 안타까운 마음을 눈물을 흘리고 위를 받고자 함이 아니라, 분명한 법적인 면에서의 죄의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값을 지불하셨음을 믿고, 죄로부터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이런 분명한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죄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

셋째 세상과 사탄의 권세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여전히 사방으로 우겨싸는 죄의 권세에서 자유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 죄 용서, 자유케 됨, 새로운 자녀로서의 신분을 확인하는 장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권세를 두려워하지 말고, 불편히 여기지 말고, 맞서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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