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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를 보면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오는 은혜와 복이 얼마나 큰가 하는 점입니다. 믿음으로 얻는 생명과 그 생명을 통해 누리는 은혜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만큼 크고 놀랍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부르심의 소망” 혹은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1:18). 그 외에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심은 우리가 평소 복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으로, 참으로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본절에서는 그러한 은혜가 어떠한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오는 지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 경로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그 은혜들을 주십니다. 본절은 “그에게서”라고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즉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복이 부어집니다. 그리고 그 복은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은 각 마디를 통해 그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잘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 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어떻게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는 지를 함께 보려고 합니다.


1.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미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이 몸의 비유는 머리로부터 오는 생명의 힘이 각 마디를 통해 각 지체로 전달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 비유는 어쩌면 당연한 말일 수 있는데, 우리 몸의 원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오는 경로를 추적한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통해 전해진다고 생각하지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보다 많은 경우는 우리 몸의 각 마디, 즉 다른 지체를 통해 전해진다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많이 세속화되고, 교회에 대한 실망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점차 가시적인 교회를 떠나려는 마음을 갖습니다. 즉 혼자 예수를 믿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교회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를 누리는 통로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 점에서 혼자 산 속에서 예수를 믿거나, 혹은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말씀을 듣고 예배하는 것은 결코 성경적인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나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부족한 성도들을 통해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 42-47절에는 초대교회의 역동적인 모습이 나옵니다. 초대교회는 많은 성도들의 계속된 모임과 가르침을 받음, 서로 교제하고 떡을 나누고 음식을 함께 하는 과정을 통해 자라가고 성장해 갔습니다. 신앙은 결코 혼자 자라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심지어는 부족한 교회의 구성원들, 때로는 부족하고 흠이 있는 목회자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를 성도들에게 전달합니다. 예를 들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당시 매우 타락한 제사장 엘리를 통해 아들 사무엘을 얻게 될 것을 응답받았습니다. 사무엘은 젖을 떼고 여호와의 전에서 자랐는데, 엘리와 그의 타락한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와 함께 있었지만, 그는 엘리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 듣는 법을 배웁니다. 비록 교회의 지도자는 타락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통해 당신의 은혜를 전합니다. 물론 이것이 목회자의 허물과 교회의 부족함에 대한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짐나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믿음이 여전히 교회 중심적이어야 할 이유를 말씀합니다.


2.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각 마디를 통해 우리 개인에게 전달되는데, 그 은혜는 우리의 분량대로 역사한다고 말씀합니다.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한다”는 말씀은 오해의 소지가 있고, 자칫 큰 격려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분량대로’는 말이 ‘자기의 한계 안에서’ 역사한다는 뜻으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량의 한계를 주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량의 한계 안에서 은혜를 주시는 것은 우리로 겸손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벧전5:5). 뭔가를 잘 하면서도 겸손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로 인해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간구를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로 하여금 너무 ‘자고’(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스스로 높아져서 교만하면 있는 은혜 마저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량의 한계 안에서 은혜를 주신 이유는 다른 사람을 의지하고, 서로 협력하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분이 아니지만, 삼위 하나님은 서로 철저히 의존적인 관계 안에서 존재합니다. 인간에게는 더더욱 이 원리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내가 뭐든지 잘 하기를 원하지만, 만약 일부의 사람들이 다 잘 하게 되면 교회는 결코 아름다운 조화를 가진 공동체로 서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가정이나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량의 한계 안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협력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량의 한계 안에서 은혜를 주신 이유는 한계가 우리로 하여금 성장하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하고 탁월하기를 원하십니다. 분량의 한계를 우리가 무엇을 못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잘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송명희 시인은 정신박약으로 “나 가진 재물 없으나”라는 위대한 시를 썼습니다. 그가 정신박약이라는 특별한 한계와 질병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이렇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아름답고 힘 있는 시를 쓸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잔인하실만큼 우리로 하여금 한계 안에서 집중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에 집중하게 하십니다.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이런 은사와 재능들을 세상적 가치 기준으로 등급을 매기고, 남의 은사를 탐내고, 감사하지 못하며, 자기 중심적으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각자에게 주신 분량의 한계 안에서 그분의 은혜를 누리도록 의도하셨습니다.


3. “그 몸을 자라게 하며”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몸을 자라게 하십니다. 각 지체를 자라게 한다고 말씀하지 않고 그 몸을 자라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즉 우리는 각자가 자라서 교회가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먼저 자라야 함을 말씀합니다. 우리 몸의 지체들 중 어느 한 지체만 자라면 그것은 암이 됩니다. 어느 한 지체의 성장이 멈추거나 늦춰지면 그것은 장애가 됩니다. 그러므로 지체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몸의 성장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몸의 성장을 강조하는 것은 교회와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새 교회당 건축을 거의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올 가을에는 입당의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교회당 건축을 해 과정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참 여러 번 있습니다. 그 중 어느 하나만 없었더라도 우리는 오늘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교회당 건축이 얼마나 더 지연될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교회의 건축 전체를 하나님께서 주관하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만약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사건들이 있었다면, 그 중 어느 하나쯤은 빠졌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여러 개의 은혜들을 감사하게 고백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 전체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몸을 자라게 하며”의 의미입니다. 지체는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아프기도 하고, 열이 나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몸이 지탱합니다. 몸이 자라면서 몸의 균형과 건강을 세워갑니다. 하나님께서 몸을 자라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붙들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교회가 바르게 세워지고, 그 교회를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교회 중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를 통해 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교회 안에 속해 있는 다른 지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분량의 한계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주신 은사에 더 집중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몸의 성장을 통해, 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통해 성도들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우리 가운데 임하는 지를 잘 이해할 때 우리는 더 크신 은혜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은혜, 선물 중 하나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도 부족한 점이 참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서 은혜의 통로로 교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의 삶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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