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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같은 본문으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부르심은 성도의 삶의 이유와 근거를 제시해 줍니다. 에베소서 1-3장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근거에 대해 말씀합니다. 4장 이하에서는 그 부르심에 근거해서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마땅히 살아가야 할 방향, 즉 부르심에 걸맞는 삶에 대해 말씀(명령)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부르심이 없는 삶은 불가능합니다. 성도의 삶은 언제나 부르심에 근거해야만 합니다. 이것을 1절에서는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를 통해 잘 설명합니다.

오늘은 2-3절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지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에베소서의 전반부(1-3장)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행하신 일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는 구원이고, 둘째는 하나 됨입니다. 이 두 가지 주제가 에베소서 후반부에서도 계속 이어지는데, 구원은 성도의 거룩함이라는 주제로 이어지고, 하나 됨은 교회의 연합, 통일성으로 연결됩니다. 그래서 4장 이하에는 거룩함과 연합이라는 주제가 번갈아 가며 나오고 있고, 본문이 포함되어 있는 4장 1-16절은 교회의 하나 됨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문 2-3절을 이해해야 합니다.

먼저 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이 말씀은 오늘 교회의 성도들에게 ‘연합하라.’ 혹은 ‘하나가 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이미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고 유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차이는 적은 듯하지만, 사실은 매우 큰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미 교회를 하나 되게 하셨다고 할 때 그것은 먼저 1) 확실하게 하나 됨을 완성하셨다는 뜻이고, 2) 인간의 노력으로는 할 수 없는 정도의 하나 됨을 이루셨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연합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전반부에서 여러 번 말씀했습니다.

본문의 주된 메시지는 2절에 있습니다. 2절은 이러한 하나 됨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우리가 지녀야 할 네 가지 성품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것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의 용납입니다. 이 네 가지 성품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도덕적 교훈도 아닙니다. 이 성품들은 앞선 하나님의 약속, 즉 성령께서 ‘이미’ 하나 되게 하신 것을 믿을 때 성도 안에 만들어지는 성품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성품은 성령께서 이미 주신 약속, 이미 성취하신 것들을 유지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 둘은 상호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 성품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이와 같은 의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온유

첫째, 온유입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온유한 사람은 모세입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이 나온 배경은 1-2절에 나오는데, 1절에는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그의 형 아론과 함께 모세의 리더십에 도전합니다. 모세가 구스 여자와 결혼한 것을 비방하고, 2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만 말씀하지 않고, 자신들에게도 했다. 그러므로 자기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지도자로서의 자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광야라고 하는 아주 힘든 상황에서 만난 참으로 난감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러한 긴급하고 도전적인 상황에서 침묵합니다. 그러자 3절에서 성경은 모세의 온유함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어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사건을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것은 모세의 온유함, 즉 말하지 않고 온유함으로 기대라며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렸기 때문임을 간접적으로 말씀합니다.

여기서 모세가 확신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에서 리더로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앞서 네 가지 성품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약속과 성취를 믿을 때 성도 내면에서 만들어지는 성품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리더로 세우신 것을 믿었고, 또 이러한 도전 속에서도 하나님의 행하심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형(아론)과 누이(미리암)과 싸우고 논쟁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그는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단지 하나님의 행하심 자체만 의지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또한 하나님께서 세우신 리더십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에서 남여선교회의 임원으로 섬기거나, 혹은 교회학교, 구역장 등으로 섬길 때 우리는 종종 리더십에 대한 도전적인 상황에 직면하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꼭 리더십에 도전한다고 느낄 필요가 없지만, 아무튼 자신이 그렇게 느낄 때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내가 꼭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닌데’하면서 말입니다. 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모세는 그 때 가만히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우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오래 참음

둘째는 ‘오래 참음’입니다. 이 성품도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셨고 또 성취하신 것을 믿을 때 만들어지는 성품이고, 또 이 성품이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하신 것을 유지하고 보존하게 합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일(응답)은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셉의 경우 17세에 종으로 애굽에 팔려가서 30세까지 종과 죄수로 살았습니다. 물론 그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13년의 세월을 기다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한 번 이렇게 가정해 봅시다. 요셉이 청춘의 푸른 꿈을 가지고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해 보겠다고 당대 가장 큰 제국 애굽으로 갔습니다. 그는 정치적 야망과 재능이 탁월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당대에 불과 13년 만에 제국의 총리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오래 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됩니다.

요셉에게는 두 개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나는 17세부터 시작된, 아주 힘들고 어려운 종살이와 죄수로서의 비참한 삶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애굽의 궁정으로 접근하게 하신 것입니다. 17세의 소년이 한 나라, 제국의 총리가 되는 과정이 불과 13년 걸렸습니다. 이런 일을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교회 교회당 건축이 2008년 8월 2일에 시작되어서, 올 8월에 들어간다고 가정할 경우 만 5년이 걸린 셈입니다. 올 가을에는 입당하리라 예상하지만, 물론 그것조차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 작은 교회당을 지으면서 5년이나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대표적인 몇 가지 사실만 언급해 보면, 우선 당시 공시지가 50만불이던 대지를 30만불에 샀습니다. 약 17-8년 전에 75,000불에 샀던 땅을 2009년에 54만5천불에 팔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60만불 이상의 재정이 들어가는 주차장 공사를 UVA에서 지어주고 있습니다. 만약 이 모든 것을 우리가 헌금해서 짓는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우리가 5년 만이 이 일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10년이면 할 수 있겠습니까? 20년이면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교회당 건축을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루고 계신지를 생각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경우 너무 급하게 서두릅니다. 그런 서두름은 결코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못합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을 훨씬 더 빠르게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성취하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그리고 그분과 함께 할 때, 그래서 그분의 성품, 오래 참는 성품을 가질 때 그 성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일을 훨씬 더 빠르고 놀라운 방법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의 용납

셋째, 용납니다. 오래 참는 것을 상황에 대한 태도입니다. 그에 반해서 용납은 사람에 대한 태도입니다. 사람을 참고 용납하는 것은 사랑이 필요합니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많은 사람을 용납했습니다.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떤 사람도 적으로 만들지 않고 용납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시므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울의 친척으로, 항상 다윗에 대해 적대적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가는 다윗에게 시므이는 마구 험한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다윗의 부하 아비새가 시므이를 즉시 죽이려고 했지만, 다윗이 이를 막습니다. 왜냐하면 혹시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나에게 저주하라 하셨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윗는 그 때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환란이 어쩌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치시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그가 한 가지 분명하게 확신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의 운명과 나라의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그런 다윗은 시므이를 용납할 수 있었고, 그런 용납은 다윗을 하나님께서 본래 처음부터 세우셨던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자리를 더욱 확고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결혼식을 할 때 주례자(목회자)자가 성혼 선포를 한 후에 인용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 지워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나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완전한 한 쌍입니다. 사랑의 용납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러한 약속과 성취를 믿을 때 생기는 성품입니다. 부부가 하나님께서 이미 완전한 한 몸으로 만드셨다는 선포를 믿을 때 부부는 피차 갈등 관계에 있을 때조차도 서로를 용납할 수 있는 마음, 성품을 갖게 됩니다. 문제는 믿음, 확신, 선포된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은 부부를 또한 더욱 견고하게 세워가게 합니다.


겸손

초대 교회 당시 로마 사람들은 겸손을 긍정적인 인격 덕목으로 생각하지 않고, 약자가 갖는 비굴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마11:29)라고 말씀하셨고,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표현하기를 “그는 ~ 사람들고 같이 되셨고, ~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십자가를 지실 때 빌라도의 심판, 무리들의 조롱과 비난에 대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겸손이라느 우리 자신을 죄와 허물에서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세상의 무시와 모멸과 멸시 중에도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의 성취를 믿는 자가 가지는, 자신에 대한 내적 확신으로부터 나오는 자세이며 태도이고 언어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향한 계획을 이미 가지고 계실뿐만 아니라, 이미 성취하셨고, 그 성취를 믿음으로 내게 내적으로 생기는 성품으로서의 겸손, 그리고 그 겸손을 통해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 성취가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품입니다.


결론

오늘날은 자기 PR 시대라고 합니다. 자신을 알리고 드러내는 일이 몸부림을 칩니다. 침묵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높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높아지는 자기 목소리는 사실 열등감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어떤 어린 학생이 자신의 밝은 목소리, 자신의 자신감 있는 제스쳐와 언변은 자기 속에 있는 열등감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느낀다고 하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발견을 한 사람은 그래도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들은 그런 생각조차 못한채 자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이 권면하는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의 용납과는 관계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 모릅니다.

오늘 본무는 우리에게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미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우리 안에서 행하신 구원의 완성, 이미 우리를 하나님의 사명자로, 사역자로, 섬기는 직분자로, 그외 여러 모양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우리의 섬김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기 목소리를 필요 이상으로 높이려고 하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려고 하고, 다른 사람의 반응과 말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지 않은 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사건에서부터 시작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과 사랑을 통해, 성령의 인치심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결국 우리 안에 이런 성품이 길러지고, 그 성품은 다시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성취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구체화되도록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필연적인 그리스도인이 누릴 은혜의 과정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까지 왔습니까?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믿음과 확신을 잃은채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주님의 말씀, 에베소서 전반부의 말씀을 다시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이루신 하나 됨의 역사를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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