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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고난주간에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면서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나눴는데, 그 중 4절 말씀을 한 번 더 나누고자 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이사야 53:4). 여호와의 종(메시야)은 고난을 받는데, 사람들은 그가 (자기 죄로 인해) 하나님께 맞고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사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다 헤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논리적 추론으로는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지 못합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논리적 추론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논할 때 부활의 가능성을 논하곤 하지만, 이런 논의는 방법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 자체가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죽은 자의 부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가능한 일(부활)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일어났음을 말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활은 인간의 사고를 가지고 논리적 추론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부활의 증인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부활의 가능성을 추론함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증인들을 통해서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의 증인들을 통해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도 예수님의 부활의 가능성을 논하지 않고,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본 증인들을 등장시킴으로 부활에 대해 말씀합니다. 따라서 우리도 성경을 그런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본문은 여자들을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내세웁니다. 이 여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최초의 증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빈 무덤을 보았고, 천사들의 증언과 예수님을 직접 보고, 그 앞에서 경배했다고(5절) 성경은 말씀합니다. 물론 여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들로 확증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이론도 많았었습니다. 조작설, 기절설, 무덤 오인설, 환상설, 동산지기설, 시체도난설 등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고 부인하려는 시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첫 번째 증인들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그들이 여자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여자들은 증인으로서의 자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자들의 증언은 최상의 아이러니였으며 하나님이 만드신 최상의 반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자들을 부활의 첫 번째 증인으로 세우신 것은 바로 이 사건이 조작된 것이 아니라는 가장 강력한 반론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시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조작하기 위해 부활의 증거를 꾸미려고 시도했다면 그들은 여자들을 첫 번째 증인으로 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첫 번째 증인들이 여자들이었다는 점은 부활의 역사가 조작이 아니었음을 역설적이게도 증명해 줍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사람들에게 설득하려고 시도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단지 여자들과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뿐입니다. 부활의 가능성에 대한 논증은 반박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증인들의 증언은 반박될 수 없고, 무효화될 수 없습니다. 재판정에서 증인들의 증언을 채택하는 것은 재판장의 결정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증인들의 증언 자체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활의 증언 앞에서 그것을 우리의 믿음으로 채택할(받아들일) 것인지 아닌지는 우리의 의지와 몫입니다. 부활주일 아침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의 증언 앞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활의 역동성

부활을 믿는다면 그 부활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1세기 제자들에게 부활은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아주 역동적인 힘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과 예수를 따르던 여인들의 삶에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부활이라는 가절 위에 삶이 변화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제자들의 삶의 궁극적인 변화는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인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부활의 근거 위에서 세워진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보면,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했다고 말씀합니다. 17절을 보면 “열한 제자가 … 예수를 뵈옵고 경배”했다고 말씀했습니다. 여기 제자들과 여자들이 예수님께 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를 경배했다는 것입니다. 전에 그들은 예수님을 좋아하고 따르고 사랑했지만, 예수를 경배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서 그들은 그를 경배했습니다. 그것은 거의 자동적이었고, 반사적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근본적인 생각의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을 경배의 대상으로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어떤 사실에 대한 역사성 자체보다는 그것을 자기 자신이 어떻게 느끼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흐름은 21세기에 와서 감동을 추구하는 성향으로 더 진보하게 됩니다. 즉 내가 감성적인 충격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도 감동을 요구합니다. 예배에 감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찬양과 기도와 말씀에 감동에 굶주려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라는 말이 설교자에게 최고의 찬사처럼 드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가 갖는 어려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에 따른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급진적인 변화가 없습니다. 감동적인 예배를 드리고 감동적인 기도와 영감 넘치는 기도와 호소력 있는 설교를 통해 마음의 부요함을 얻고, 변화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전혀 변한 것이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당황해합니다. 제자훈련을 받고 영성훈련을 받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리더에게서 변화를 찾아볼 수 없어 오늘날 우리교회들이 당황해하고, 놀라워합니다.

왜 안바뀌Ž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을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을 때, 우리에게 나타나는 첫 번째 반응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감동이 아닙니다. 좋은 기분도 아니고, 어떤 흥분도 아닙니다. 그것ㅇ느 바로 두려움입니다. 본문 5절을 보면, 여자들이 천사들을 만났을 때 천사들이 여자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10절을 보면, 여자들이 다시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 때 예수님께서도 여자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성전을 환상 중에 보면서 화려함에 감탄하거나 황홀함에 빠지지 않고, 자기 죄로 인한 두려움을 경험했습니다.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을 때 두려워했습니다.

물론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은혜의 하나님이시며, 부요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 첫 번째 가진 반응은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동안 우리 안에 계속 함께 합니다. 그것은 결코 공포와 같은 두려움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그분께로 더 가까이 가게 하는 경건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결론

저는 오늘 이 시대의 교회에 과연 부활의 믿음이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니 우리교회는 정말 부활의 믿음으로 인한 두려움이 있을까요? 아니 목사인 저에게는 부활의 신앙을 통해 가진 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으로 늘 하나님 앞에 서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송한 말쓰밉니다만, 아마도 오늘 이 시대의 교회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이미 부활의 믿음, 그리고 그로 인한 경건한 두려움을 너무 많이 잃어버렸을 지 모릅니다.

부활은 단지 우리가 죽은 다음에 다시 살아난다는 것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전에 우리 주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음을 믿고, 부활의 주님 앞에 두려움으로 서는 것이 부활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여자들은 자신들도 모른채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를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 찼고, 그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믿음이 있을까요? 예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데 어떻게 예배에 소홀함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원망하며 핑계를 대면서 게으를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는데, 어떻게 우리가 조금 삶이 어렵다고 절망하며 낙심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는데, 어떻게 우리가 기쁘지 않을 수 있겠으며, 흥분하지 않을 수 있„E고, 감동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과 여자들에게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우리들에게도 부활의 믿음으로 인한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부활주일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모두가 자신들에게 부활의 믿음이 있는지 점검해 보기를 권합니다. 부활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우리의 감성적 반응, 우리 마음에 주는 강한 감동, 예배 때마다 받은 삶의 기쁨과 환희, 이 모든 것들이 한순간 사라질 수 있습니다.

부활의 믿음은 두려움과 함께 기쁨을 우리에게 가져옵니다. 부활의 믿음은 삶을 변화시키는 역동성을 갖게 합니다. 삶의 변화가 없는 것은 의지력의 부족도 아니고, 사랑의 부족도 아니고, 기도의 부족도, 찬송의 부족도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여자들과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했습니다. 그 증언은 지금도 유호하게 내려옵니다. 그 증언을 채택할 지, 안 할 지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주님의 부활을 믿을 때 얻게 됩니다. 감동은 그 믿음과 함께 뒤따라오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은 우리에게 기쁨도, 열정도, 마음의 흥분도,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힘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인생의 급진적인 변화도 가져옵니다. 부활의 신앙으로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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