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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구조 – 세 번의 ‘들으라’는 말씀의 반복한다. 12절, 야곱아, 나의 부른 이스라엘에 나를 들으라. 14절, 너희는 다 모여 들으라. 16절,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 말을 들으라. 18절,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0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우리는 설교를 얼마나 깊이 듣는가? 말씀을 듣고 또 생각하고 또 묵상하는가? 말씀이 한 주간 개인의 삶 속에 다시 질문되어지는가? 말씀은 보통 우리의 평소 삶의 가치관과 충돌할 때가 많이 있다. 진지하게 들으려고 할수록 더 많은 어려움에 부딪힌다. 말씀을 전하는 목사도 갈등하면서 전할 때가 있다. ‘이것을 이대로 전해야 하는가?’ 하면서….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옳을까? 라고 질문하게 된다. 본문에서 하나님도 세 번에 걸쳐서 당신의 말씀을 들으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듣지 않았다. 끝까지 듣지 않았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슬프다’고 탄식하신다. 그리고 ‘만일 너희가 들었더면’ 네 안에 평강이 넘쳤을 것이고,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라고 하신다. 듣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아니 잘 알아듣지 못한다. 왜냐하면 항상 자기 입장에서 듣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다 자기 입장에서 듣는다. 자기 입장에서 해석하고, 자기 입장에서 바라본다. 어느 한 물건을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보인다. 내가 어디 서 있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고, 내가 서 있는 그 자리에 한정되어 사물을 보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보는 것이 무엇인가도 생각하지만, 내가 지금 어디에 서서 보는가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듣는 훈련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수없이 말씀하셨지만, 돌아서면 듣지 않고 자기 생각,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하셨다.

본문은 몇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님은 먼저 ‘야곱아, 나의 부른 이스라엘아 나를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첫 번째 하나님께서 들으라고 하시고는 그분의 존재에 대한 말씀이다. 즉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에 폈나니 내가 부르면 천지가 일제히 서느니라.’ 땅의 기초를 정하고, 하늘을 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삶의 기반이고, 삶의 기초이다. 이 땅 위에, 그리고 이 하늘 아래서 인간은 삶을 살아가고 누린다. 땅에 뿌린 식물이 양식을 내고, 하늘에서 비가 내려옴으로 풍성한 수확을 거둔다. 인간의 삶과 생명의 근원이 여기서 나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땅과 하늘을 섬겼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그 땅의 기초를 정하고, 하늘을 펼쳐서 놓으신 분이라고 선포한다. 세상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의 손 안에서 온전하다.

12-13절은 하나님께서 우주의 창조주시며, 근본이시고, 생명의 근원이심을 선언하신다. 세상을 보라. 창조주 없이 어떻게 세상의 존재가 가능하겠는가? 진지하게 이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하나님께 질문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는데, 왜 이 땅은 이렇게 혼란과 혼동이 계속 되는가? 하는 질문이다. 질문해야 한다. 그런데 성도가 질문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이 질문한다. 성경은 수많은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져있다.

하나님은 당신이 세상의 창조주이심을 선언하신다. 이것은 과학적으로도 논증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의 창조역사가 단순히 과학적 논증의 문제가 아니다. 이 질문은 과학이 오늘날과 같이 발달되지 않았을 때도 같은 질문을 던져졌다. 문제는 창조주 하나님은 당신이 우주의 주인이심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점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 우주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신다.


두 번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14절, “너희는 다 모여 들으라. “나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가 나의 뜻을 바벨론에 행하리니 그의 팔이 갈대아 인에게 임할 것이라. 그들 중에 누가 이 일을 예언하였느뇨?” 두 번째 하나님께서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은 역사 가운데 개입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포로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 한 복판에 개입하실 의지를 드러내신다. 하나님은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를 기름 부음 받은 자로 세우셔서 바벨론을 무너뜨리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신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니님의 모습이다. 역사의 주인으로 나타나신다. 그분은 역사를 당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시는 분이시다.

세 번째 하나님은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일단 내 생각을 접고 그가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경험한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인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실패작으로 만드시거나 부르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이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말씀인지 아는가? 창조주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조물을 만드시고, 그 피조물을 통해 당신의 형상을 드러내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왜 이렇게 고난을 많이 당하는가? 왜 하나님은 우리가 선악과를 따먹을 것을 다 아시면서 에덴 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어 놓으셨는가? 그 답이 무엇인가? 너무 단답형으로 말하는 것 같지만, 그 답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대화가 가능하려면 인간에게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피조물이 창조주와 대화한다는 것은 사실 모순이다. 우리가 만든 장난감이나 로보트와 대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프로그램을 입력해서 말할 수 있지만, 프로그램조차도 인간의 아이디어와 기술로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함께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신비롭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악과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단적인 표현이다.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첫 번째 사인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안에서 세워져 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치없게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매우 뛰어나게 만드시고,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 인간이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위대함을 남용했다. 선하게 사용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자유의지의 남용을 왜 못막으셨을까? 하나님은 지금도 인간을 결코 억지로 막거나 이끌지 않으신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하나님은 한 번도 인간을 협박하거나 위협하지 않으셨다. 스스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셨다.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탕자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셨다. 이것이 아버지의 심정이다. 하나님의 마음이다. 왜 그냥 기다리셨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의 대화자(자유인)로 만드시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강제로 붙들어 놓고 대화하자고 한다면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하나님이 인간을 강제해서 돌아오게 하신다면 그것은 자유로 판단하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일 수밖에 없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시고, 그 인간과 대화하기를 원하셔서 스스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사랑이다. 안돌아오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신다. 하나님은 그만큼 값을 지불하셨다. 이해할 수 없다.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인간적이다. 우리에게 가까기 다가오신다. 이 사실에 놀라고 감동하고 기뻐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세 번째 당신의 말씀을 들으라고 명령하시면서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 말을 들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너희의 구속자, 즉 구원자이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다. 그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하나님은 이제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온전하게 세워가시기 시작하신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명의 호흡을 주셨다.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죄로 타락하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다시 붙드시고 인간들에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뜻는 무엇인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를 닮은 풍성하게 자라간 생명력 넘치는 인간으로 만드시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주님께서 만드셨고, 디자인하셨던 그 인간의 품위와 형상,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신다.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분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놀랍고 크신 사랑 앞에 서라는 것이다. 그분은 인간을 엄청나게 사랑하신다. 그분은 인간은 위대하게 창조하셨다. 이제 그분은 깨어진 질그릇같은 인간을 다시 당신의 그릇, 거룩한 그릇으로 조성하신다.

인간은 타락했다. 그래서 모든 생각과 사고에 있어서 비판적이고, 불평이 많고,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은 다시 인간을 회복시키신다. 이것은 그야말로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이루어가는 합작품이 되는 것이다. 멋진 작품으로서의 인생을 만드시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생각해 보라.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자세히 뜯어 보라. 잘 생겼는가? 못생겼는가? 늘 연애인 얼굴만 보고 연구하던 사람들의 눈에는 그리 멋있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도하면서 보라. 예쁘지 않은 얼굴이 없다. 키가 크면 큰다로 싱겁지만, 멋있고, 키가 작으면 작은대로 아담하고 진지하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를 키우면서 많은 기대를 자녀에게 한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부모가 하지 못한 이상, 부모가 살아왔던 것 이상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원한다. 하지만 거기에 못미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잘 살펴보라.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얼마나 위대한 일을 이루시는가를 잘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런 부족함이 많은 사람들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것, 더 큰 것들을 이루시는 것을 본다. 조금 부족한 사람들이 집중력이 있음은 이미 여러 곳에서 증명된 이야기다. 발명왕 에디슨, 아인슈타인 등의 사람들은 대부분 어느 한 부분에 치명적인 문제를 지녔던 사람들이다. 세상에서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 중에는 인간적으로 볼 때 부족함이 참으로 많았던 사람들이 많았다.

모든 인간은 한편으로는 다 부족한 면을 가지고 있다. 이미 죄로 인해 다 상처나고 모난 부분이 있다. 어딘가에는 왜곡된 인격과 상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거기서 온전함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선한 일을 이루신다는 소망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 즉 전능하신 하나님,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하나님, 인간을 처음 만드시고 조성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또한 그 인간의 삶의 목적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보라는 것이다.
        
이 일을 이루시는데 있어서 문제가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슬퍼하신다. 18절을 보라.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라고 아파하신다. ‘만일 들었더면’ ‘만일 들었더면’ 인생의 문제가 어디서 생기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데서 일어난다. 인간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데서 일어난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가? 인정 안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비록 믿는 사람들일지라도 이 말씀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그것은 목사의 말일 뿐이다. 그것은 교회에서 그냥 하는 말일 뿐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만일 들었더면,’ 네가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갱이 같아서 그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 지금 바벨론에 포로민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더라면 네 평강이 강과 같이 흘렀을 것이다. 풍요로운 생명력을 누렸을 것임을 말씀한다. 이런사람을 살아간 사람들을 성경은 여러 사람 우리에게 보여준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이삭, 야곱, 요셉, 모세가 그런 사람들이었다. 다윗과 다니엘,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사무엘, 등 히브리서 11장은 이들의 삶에 대해 수없이 증언해주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잘못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이제까지 잘못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또한 인간에게는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이것을 성경은 회개라고 한다. 우리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판단을 따라 살아간 것을 회개하고 이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다시 한 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그것은 바로 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다시 구속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즐거운 소리를 이를 전파하라고 말한다. 포로민으로 살아가는 유대인들 마을에 이 소식을 전하라고 말씀한다. ‘여호와께서 그 종 야곱을 구속/구원하셨도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키실 때와 같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한다. 사막을 통과하게 하지만, 그들의 목이 마르지 않게 하시던 하나님을 기억하게 한다.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게 하시고, 바위를 쪼개서 물이 솟아나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다. 주님은 이 말씀을 들려주기 위해 처음부터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해야 할 이유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마지막 절이 우리의 눈에 거슬린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여전히 딴전을 피우며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듣지 않고, 엉뚱한 비판과 불만만 쏟아놓는다. 그들에게는 평강이 없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얻어 누릴 분복이 없음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놀라운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놀라운 생명의 힘과 능력을 주셨다. 이 놀라운 은혜와 생명을 누리자.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말씀을 들었으면, 한 주간 고민하면서 그 말씀 앞에 서라. 말씀이 나를 바꿀 때까지 그 말씀을 굳게 붙들라. 하나님의 창조적 회복의 은혜를 맛볼 때까지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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