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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계속해서 인생의 목적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고, 둘째는 교제, 셋째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라고 지난주까지 말씀드렸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금방 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매우 쉬운 질문에 대한 답을 듣는 느낌으로 인생의 목적에 대한 설교를 들었는지 모릅니다. 들으시면서 이렇게 생각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인생의 목적! 그것은 수많은 철학자들이 얼마나 많이 연구하고 궁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딱 떨어지는 답을 찾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뭐냐 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가 우리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이 아니며, 우리가 원해서 오늘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우리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만남을 통해 존재합니다. 관계적인 면에서 우리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자녀로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영적인 면에서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가운데 태어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가 이곳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존재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마땅한 결론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곳으로부터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때때로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를 계획하지 않으셨을지라도 하나님을 우리를 계획하시고 예정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인생의 목적을 주님께로부터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이 누구의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목적과 소망을 따라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 합당하게 살도록 되었다는 점이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분의 목적을 따라 사는 것이 비참해지거나 누군가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을 경험하고, 자유로워지며, 우리의 능력을 더 크게 발휘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사면 먼저 매뉴얼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매뉴얼대로 운전을 해야 합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 차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굳이 매뉴얼까지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자동차는 만들어진 원리를 따라 운전해야 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를 테면 자동차를 사자마자 과속을 하는 것은 자동차에 상당히 무리가 갑니다. 또한 새 자동차를 구입하면 처음에는 1,000 마일 정도만 타고 엔진 오일을 갈아줘야 합니다. 그래야 자동차가 만들어지면서 엔진 안에 있는 금속 찌꺼기들이 자동차를 손상시키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1993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한국에는 대부분의 차들이 자동기어가 아니라, 수동기어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토매틱으로 된 차들이 막 나오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어떤 분이 스틱으로 된 차를 샀습니다. 그리고 난 후 오토매틱으로 된 차를 사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늘 스틱으로 된 자신의 차를 반쯤은 오토매틱처럼 운전을 했습니다. 1단, 2단, 그리고 3단으로 가지 않고 5단으로 변속을 했습니다. 아마도 그 분의 차는 오래 가지 않아 transmission에 무리가 가고 말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를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고, 그러므로 만든 사람이 의도한대로 운전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동일한 이치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편리와 편안함만을 추구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만드신 분의 뜻과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야 우리의 인생은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은 성경에서 크게 다섯 가지로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에 우리는 그동안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이 우리의 삶을 제한하거나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누리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습관이 그들을 흑사병으로부터 지켜주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거룩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력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두 번째의 교제도 동일합니다. 이웃을 돌보고 사랑하는 것은 분명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콰이 강의 기적’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처럼 사람들을 돌보고 사랑하는 일들을 통해 전쟁포로의 참혹한 상황에서 그들은 생명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인생에 대한 목적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즉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회복하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은 것처럼 친밀감과 관계의 회복을 이루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는 것, 즉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삶을 유익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의 삶의 출발은 하나님으로부터 발견해야 합니다.

오늘은 네 번째 인생의 목적입니다. 그것은 섬김과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열정적으로 섬기고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학생이면 공부하는 일에, business를 하시는 분이면 사업장에서, 회사원이면 회사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 일합니까? 내가 아니라 바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아내는 남편을 위해 존재합니다. 남편을 위해 일합니다. 또한 남편은 아내를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인생의 삶의 방향이며 목적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다른 이를 섬기므로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섬김은 우리의 사역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장면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주님은 잡히시기 전날 밤에 다락방에 모여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본문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설명이 굳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당시 발을 씻기는 것은 종들이 하는 주된 일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먼저 많이 나는 이스라엘의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 그들은 외출하고 집에 돌아올 때 반드시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12명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들어올 때 그들은 서로 눈치만 보았습니다. 아마도 혼자 외출했다가 자기 집에 들어왔다면 자기 발 자기가 씻고 들어왔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12명과 예수님까지 함께 움직이는 제자들의 그룹은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발만 씻기도 그렇고, 또 다른 동료들의 발을 씻기는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 간에 서로 서열 다툼을 한 것이 성경에 나오는 것을 보면 그들은 적지 않게 자주 그런 논쟁들이 오고 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대야에 물을 가져다가 수건으로 허리를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으십니다. 얼마나 민망하고 죄송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발 씻기는 일을 다하고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다른 사람을 섬긴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과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이런 사명을 주셨을까요? 주님은 왜 인간의 본능과는 반대되는 그런 어려운 일들을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까? 답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그렇게 서로 섬기면서 살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자동차가 만들어진 원리대로 운전을 해야 사고 없이 잘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원리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 주된 원리 중에 하나는 바로 섬김입니다. 섬기면서 사는 것이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고, 또 섬기면서 살아갈 때 참 기쁨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두 사람의 인생에 대한 한 단면을 글을 통해 읽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Don Marrs 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우체국 직원이었습니다. 매일 10km 정도를 걸어 다니면서 편지를 배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임파선 결절암이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1년 동안 그는 화학요법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힘든 기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을 의지하면서 견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TV를 보다가 테리 폭스라는 22세의 카나다 육상선수에 대한 뉴스를 보았습니다. 이 사람은 테리 폭스라는 육상선수가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선수는 골수암에 걸려 다리를 절단하고 더 이상 뛸 수 없게 됐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캐나다 암협회’의 기금을 조성하고 다른 암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캐나다를 횡단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얼마 뛰지 못하고 쇠약해져서 더 달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뉴스를 접하던 바로 그 날 그는 죽었습니다.

이 뉴스를 접한 이 집배원 Don Marrs는 뭔지 모를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순간 주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메아리쳤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 그는 육상 선수가 다 뛰지 못한 것을 누군가가 뛰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기금을 모으면서 94일 동안 3,400km를 달렸습니다. 이 장거리를 달리면서 그는 14kg이나 체중이 빠졌고, 달리는 중에 수많은 위험한 일들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또 이 일을 통해 그는 용기와 소망을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자기와 같이 암으로 고통을 겪는 이웃들을 섬기기 위해 자신의 생을 불태웠습니다. 그가 그 달리기를 다한 후에도 여전히 그에게는 암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영광을 찬미할 수 이야기를 주신 것을 감사하고, 앞으로도 계속 남은 생애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노래하며 살겠노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살려고 할 때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려고 할 때 훨씬 더 강한 열정과 에너지를 갖게 됩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8살짜리 커비라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피가 응고되지 않는 혈우병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병을 치료하던 과정에서 ‘혈액응고 인자’가 감염되는 바람에 아주 어린 시절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습니다. 그런 어린 아이 커비에게 소망이 있었습니다. 1) 다른 사람들이 에이즈 환자와 친구가 되어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했습니다. 2) 좋은 삶이란 꼭 길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했습니다. 3) 마지막으로 사람은 자신이 바라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이 아이는 이 일을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기쁨으로 뛰어 다녔습니다. 지역신문에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실고,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도 친구가 필요해요. 그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함께 수영을 하고, 슬플 때면 껴안아 주어도 괜찮아요’ 이 기사가 나가면서 폭발적으로 인기가 있어 TV에도 출연을 했습니다. 그는 또한 형에게 부탁해서 자신에 대한 글을 써서 가이드 포스트에 싣도록 권유했습니다. 그는 소아 에이즈 환자를 돕기 위한 지역 장거리 걷기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정치가와 사업가들에게 편지를 쓰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모금을 했습니다. 형들이 하는 필라델피아의 부랑자들에게 줄 샌드위치를 준비하는 일을 돕고, 그의 아버지가 퇴근해 집에 돌아올 때면 깨어서 아버지를 맞이할 수 있도록 집에서 언제나 자신의 낮잠 시간을 조절했습니다. 커비는 자신에게 허락된 얼마 안 되는 시간을 베푸는 삶으로 꼭꼭 채워 넣으려 했습니다. 매일 매순간마다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가운데 삶을 역동적으로 누려갔습니다. 그는 그렇게 살다가 11살에 되어서 주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 모두에게 이 사람들처럼 특별한 삶으로 부르신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섬기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살 때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려고 할 때 훨씬 더 강한 동기부여와 능력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섬기면서 살도록 하셨고, 봉사하면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만약 교회에서 아무리 빛이 나는 일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의 명예나 인기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가치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일, 남들이 안 알아주는 일이라도 그 안에 섬김과 봉사의 마음, 정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위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런 일들을 통해 오히려 우리 자신에게 더 큰 자신감과 능력과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커비는 비록 11살의 나이로 죽음을 맞게 되었지만, 그는 진실로 인생이 삶의 길이에 있지 않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그런 삶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진실로 참된 삶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인생이 어떤 것인지 알기 원합니다. 그렇게 섬기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을 위해 불태움으로 우리 자신이 더 큰 은혜와 기쁨을 맛보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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