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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에베소서에 나오는 바울의 두 번째 기도 중 네 번째 간구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여기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에 사용된 헬라어 전치사는 ‘eis(에이스)’인데, 이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살려 본문을 번역한다면,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with) 채워진다는 뜻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충만하심까지(unto) 채워진다는 뜻입니다. 전자는 하나님께서 가지고 있는 것들 중 일부를 가지고 우리의 인생을 충만하게 하신다는 뜻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충만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도 같은 맥락에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충만케 하시는데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있는 일부를 가지고 충만케 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도록 충만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요한일서 3장 2절에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가 되면 우리도 그분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우리가 그분이 주시는 어떤 것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분에게까지 이르는 충만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바울의 마지막 기도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가지고 계신 것을 가지고         우리의 삶의 빈자리,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언제든지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부분 맞는 말이지만, 본문의 본래적 의미는 그것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께서 충만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충만하심에 이르기까지, 즉, 우리를 그분과 동일한 모습에 이르기까지 충만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둘의 차이는 매우 다릅니다. 전자는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의 빈 자리, 우리가 생각할 때 나는 이런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기도하는 충만함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아나라, 즉 기준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자리까지 이르는 충만함이라는 것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의 치유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가다가 성전 미문 앞에 앉아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자주 그곳에 나와 구걸을 하는 사람이었고, 성경은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그는 태어나서 한 번도 정상적인 사람처럼 걸어본 적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앉은뱅이의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을 때 원하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걷는 것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은과 금, 사실은 동전 몇 푼을 원했습니다. 즉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라고 한 것은 ‘(네가 원하는) 은과 금은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내가 오늘 당신에게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것을 주려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충만함이다’고 하는 것입니다.


충만함의 차이

여기서 우리는 충만함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원하는 충만함이란 무엇입니까? 그에게 충만함은 그의 동전 넣는 그릇에 동전으로 가득차는 것입니다. 적어도 어제보다 더 많은 동전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그에게 충만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충만함이란 하나님처럼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 충만함이 하나님의 충만함에 이르기까지 충만한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그런 충만함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20절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분이 주시는 충만케 하심은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의 구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것들입니다.

앉은뱅이가 얻은 하나님의 충만함을 볼 때 그는 동전 몇 푼이 아니라,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그에게 주어진 큰 변화는 영적인 회복이었습니다. 자기 인생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으로 인한 회복이었습니다. 그를 지지해주시고, 그와 함께 하시고, 그의 고통을 살펴주신 하나님으로 인해 자기 인생에 대해 갖게 된 영적인 회복은 측량할 수 없는 충만함이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목적 있는 삶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삶의 많은 변화를 요구받았습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결혼을 했을 지도 모르고, 자식을 낳았을 지도 모릅니다. 이런 변화는 그에게 전보다 훨씬 더 책임있는 삶을 살아야 할 사명을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충만함입니다. 이 충만은 앉은뱅기가 원하는 것이 조금 더 충만하게 채워짐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과 금을 더 많이 얻는다고 걸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 당신 자신으로 채워주시는 은혜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충만

21절은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여기서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며, 충만함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충만으로 충만하게 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때 충만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원하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고, 하나님의 위대함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충만

성경은 우리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충만함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게 합니다. 교회는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인도합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그 은혜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 은혜를 소망해야 하고 기대해야 합니다. 교회는 바로 그 은혜를 누리는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의 충만함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의 삶이 충만해지는 일을 위해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는 이 일을 부정하거나 교회의 사명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가 너무 약한 것을 봅니다. 미국에서 아주 탁월하게 목회하는 어느 목사님의 아들이 얼마 전 자기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너무 허약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충만함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함은 우리의 삶을 조금 더 낫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구걸하는 앉은뱅이가 불쌍하니까 그에게 오늘은 조금 더 많은 적선을 할 수 있도록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풍성함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교회가 바로 그런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삶을 소망하도록 인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삶을 함께 바라보며, 그리고 그런 삶을 누리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교회 가운데 그런 삶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고난 중에도         기꺼이 믿음을 위해서 기쁨으로, 자원해서 자기 목숨을 내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능력과 은혜, 충만함을 오늘은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교회를 나가는 사람들의 자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런 사람들에게 교회가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바울처럼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에 이르기까지 우리 교회도, 우리 자신들도 충만하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충만함을, 아니 하나님의 충만함에 이르기까지 우리도 충만해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충만

두 번째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즉 하나님의 풍성함에 이르기까지 성도의 삶이 풍성해지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짐을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리스도를 믿고 아는 일을 통해 우리는 온전한 사람을 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즉 충만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가 곧 우리의 충만함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곧 우리의 충만함이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그의 충만함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이 곧 우리의 충만함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충만함을 얻는다는 말은 그리스도로 만족한다는 뜻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어떤 것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얻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으로 충만함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기쁘고 감사하고 만족하며 충만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영광이 영원무궁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시라고 고백합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처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는 말씀을 붙들고 믿고 살아갑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으로 충분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즉 삶의 필요는 그분이 알아서 우리에게 채워주실 것임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우리의 심부름꾼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종처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소유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부자가 되는 것 자체가 나쁘거나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목적이 없이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것은 영적 빈곤의 외적인 표시입니다. 영적으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인해 그 마음의 부요함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한 삶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채워주심에 대한 기대나 만족이 없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비집고 나온 욕망이고, 탐욕입니다.

더 크고 많은 책임이 있는 자리(지위)를 원하는 마음도 거기에 목적이 없다면 그것은 단지 자신의 내적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일 뿐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순간, 나는 당신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없음을 공개적이고 공식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가지고 있는 소유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론

교회는 무엇입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함을 드러내야 하는 생명의 공동체입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와서 새 힘을 얻고 새로운 삶의 목적을 발견함으로 마치 앉은뱅이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자리에서 일어서서 뛰고 걸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처럼 그렇게 생명 공동체로서의 사람을 살리는 역사를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충만함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충만하심에 이르기까지 충만함을 경험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21절은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 안에서와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원무궁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함을 간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듯이 그리스도 예수도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분 안에서 모든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소유함으로 하나님의 풍성함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나는 당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가진 소유를 원한다고 우리는 너무 자주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분을 원해야 합니다.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충만함에까지 충만해지는 주의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하다는 말은 하나님 그분으로 충만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분으로만 우리는 충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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