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샬롯츠빌한인교회

목적이 이끄는 삶

어떤 믿음의 형제를 보내며

관리자 2016.09.04 19:45 조회 수 : 56

인디애너폴리스에 다녀 온 지가 벌써 두 주가 다 되어간다. 그 동안 내 마음을 누르고 있던 생각들을 이제는 좀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장례식의 순서 가운데 하나로 강두헌 형제에 관한 기억을 같이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그에 관한 좋은 기억이나 특별한 기억을 같이 나누며 그를 추모하자는 것인데 참 좋은 순서였다. 그 시간에 임마누엘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한 분 정도는 나가서 그에 관한 기억은 나눠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지만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내가 그를 좀 더 잘 았았더라면...  아쉬움이 남는다. 
 
그 시간 나는 자리를 지키며 나와 강두헌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관계를 맺었는가 생각해 보았다.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으며 내가 저 자리에 나가서 그에 관한 기억을 나눈다면 나는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사실 나는 강두헌 형제를 잘 알지 못한다. 그와 같은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해 본 적도 없었고 비슷한 연배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인연으로 각별하게 친한 적도 없었다. 2009년 여름으로 기억하는데 강은정 자매와 두 분이 시카고에 방문할 일이 있었다. 그때 그는 이미 뇌종양으로 투병 중이었고 목사님과 몇몇 교회의 형제 자매들이 우리 집에서 같이 모였는데 나는 그 때 처음으로 강두헌 형제를 만났다. 강두헌 형제가 인터넷에 올린 글(금 이 글은 인터넷에 없습니다)과 사진들이 그 날의 모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게 한다.
 
그 때 처음 만난 강두헌 형제는 자신이 병을 통해 하나님과 더 친밀하게 교제하게 된 것과 그 병을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일지라도순종할 수 있을 것같다는 신앙고백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순종이라는 말을 할 때 나는 혹시 그가 이미 죽음을 예감하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섬뜩한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한편으론 그에게 특별한 은혜로 다가 온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감격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리고 나는 교회 수양회와 다른 몇 번의 기회를 통해 그를 짧게 알았을 뿐이다. 
 
장례식의 마지막 순서에 그의 아내 강은정 자매가 인사말을 대신해서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신앙을 지키려고 몸부림쳤는지를 증언했다. 그녀가 한 말 가운데 기억나는 것은 남편의 병을 통해 자신도 참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고 강두헌 형제가 마지막까지 "살려고만 발버둥 치지" 않았고 그것이 자기에게 소망과 용기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남편을 보내면서 하는 말치고는 좀 이상한 말이었지만 내 귀에 확성기를 대고 말한 것처럼 크게 들렸고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 "만"이라는 말 한 마디가 나를 일주일 동안 붙잡고 있었던 셈이다. 내가 들으며 이해했던 "만"은 이것이다. 즉 그가 살려고 몸부림 치는 과정에 그는 말로든지 혹은 행동으로든지 (1)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으며 (2) 하나님이 자기를 일으켜 세우시리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3)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였다는 것. 
 
그래서 그는 자기 가족들에게 삶의 허무를 유산으로 남기지 않았다. 정반대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선하심과 아직도 역사하심을 유산으로 남긴 것이다. 그는 죽어가면서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었고 부인할 수도 있었고 저주할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 남는 것은 허무와 절망 대신 소망과 용기였던 것이다. 그것이 내가 "만"을 통해 이해한 그의 신앙이고 그의 삶이었다. 
 
어떤 사람은 장례식에 가서 배우라고 말한다. 강두헌 형제를 보내면서 나는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요 17:3)이라는 말씀을 조금은 더 깊이 있게 알게 된 것 같다.
 
(2012년)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