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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이끄는 삶

시지프스의 신화

관리자 2016.08.28 21:44 조회 수 :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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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사랑방에서 부활에 관해 생각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희는 고린도전서 15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읽었습니다.

 

제 눈길을 끄는 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부활에 관한 핵심 구절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절한 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 구절은 32절 후반절이었습니다.

 

"...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부활에 관한 소망이 없는 사람들의 삶에 관해서 바울이 생각하는 관점입니다. 저는 죽음 이후의 삶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허무할 것인가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목적이 이 땅의 눈에 보이는 것뿐이고 죽음 이후에는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면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순간을 먹고 마시며 즐기자고 할 것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저는 Albert Camus가 쓴 시지프스의 신화를 생각했습니다.

 

시지프스는 제우스의 비밀을 누설한 죄로 영원히 큰 돌을 산꼭데기로 굴리며 올라가는 형벌을 받습니다. 그가 돌을 산꼭데기까지 굴리고 올라가면 그 돌은 다시 산 아래로 굴러내려 갑니다. 다시 원위치 되는 것이죠. 그러면 시지프스는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서 그 돌을 굴리며 산을 올라야 합니다.

 

카뮤는 시지프스가 받은 것이 가장 잔인한 형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시지프스가 하는 일을 철저히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돌을 굴리며 산을 올라가는 "목적"은 영원히 성취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카뮤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바로 인간의 삶이 시지프스의 운명과 똑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이 철저히 무의미하다는 것이죠. Life is essentially meaningless!

 

시지프스처럼 뭔가 열심히 힘을 들여서 평생 노력해야 하지만 그 노력이 정말로 철저히 허무한 목적을 위해 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정말로 좌절스럽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일입니다.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은 그렇게 허무하게는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깨달은 인간은 허무의 문제를 이겨보려고 노력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삶이 허무하지 않다고... 자기에게 잠시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 삶에는 재미 있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그렇게 부인함으로써 극복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잊으며 살려고 노력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고 뭔가 내 가슴 속의 허무를 몰아내 줄 수 있는 일을 찾아 거기에 몰두함으로써 잊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안 되면 마약이나 술로 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류의 사람들은 종교를 추구함으로써 허무의 문제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카뮤는 말합니다. 시지프스에게도 돌을 굴리며 산을 오르는 것이 "한 사나이의 가슴을 채울 만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우리는 시지프스가 행복했을 것이라고 상상해야만 한다"라고 말합니다. 철저히 무의미한 일에 바쳐진 삶, 그리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그 안에서 한 가슴 뿌듯이 채울만한 일에 헌신하고, 그리고 "나는 행복했노라"고 외치는 삶...

 

(2006년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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