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말 잘 듣기

by 주병열목사 posted Aug 0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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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휴가를 보냈습니다. 멀리 가진 못했지만 그동안 뵙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세 분의 목사님을 뵀습니다. 두 분은 저보다 연세가 많은 분들이었고, 다른 한 목사님은 후배였습니다. 그야말로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는 본래 말을 많이 하지만, 그래도 저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새벽 2시, 다음 날은 새벽 5시, 그리고 또 마지막 날은 새벽 4시까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고 나니 휴가를 마치고도 적잖은 피곤이 남아있었습니다.

이런 긴 대화를 통해 깨달은 것은 저 자신이 전보다 조금 더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는 함께 의견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했지만, 저 자신의 생각에 머물 때가 많았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대화를 하면서도 실은 상대방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견지하려는 무의식적인 자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긴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그리고 그 분들로부터 뭔가 배우고 싶어 하는 저 자신의 모습을 보고서야, 전에 그렇게 하지 못했던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실 지금도 그런 모습이 완전히 없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후배 목사님이 이런 경우 어떻게 표현하는지 그의 말과 단어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이 순간 멋쩍기도 했고, 또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편에 저를 두렵게 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도 제가 그런 자세로 서 있지 않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말씀을 끊임없이 묵상하며 전한다고 하지만, 실은 저 자신의 관점의 울타리 안에 갇혀서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에게 말씀하시도록 하지 않고, 나의 생각과 관점을 논증해 줄 수 있는 논리적 근거들을 성경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았는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수 천 년 동안 그렇게 이용되어 왔습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는 그들의 논리로 해석되었고, 많은 철학자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의 논리적 근거를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근거를 찾는 자에게가 아니라 진실로 그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에게만 바르게 들려집니다. “네 가지 땅에 뿌려진 씨 비유(마태13:1-9)”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듣는 자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진실로 그 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병열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