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인 자유

한성령

by kathy posted Nov 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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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일찍 잠이 깨어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365일 묵상집인 '주님은 나의 최고봉'을 읽었다. 오늘 날짜의 제목은 "영적 가난을 아는 지식". 로마서 3장 24절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 말씀의 묵상이다.

 

하나님의 은혜인 복음은 사람의 영혼에 강렬한 갈망과 함께 강한 불쾌함을 일으킵니다. 그 이유는 복음은 듣기에 유쾌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어떤 교만이 있어서 주고 또 주려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빈손으로 선물을 받으려 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내 생명을 순교의 제물로 바치겠습니다. 나는 평생을 봉사하며 헌신할 것입니다. 어떤 희생이라도 다 치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나를 지옥에나 떨어져야 마땅할 죄인이라고 모독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선물을 받는 것만이 오직 내가 해야 할 전부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벌어낼 수도, 받아낼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선물로 받든지, 또는 하나님 없이 우리가 직접 하든지, 이 두 가지 선택 밖엔 없습니다. 가장 위대한 영적 축복은 우리가 영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을 아는 지식입니다. 우리가 그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주님은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내 스스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가난의 문을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스스로 영적으로 부요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하나님 앞에 자부할 만한 것이 있고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아무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오직 우리가 영적으로 갈급 할 때 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속성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는데 (역자 주 - 그리스도의 생명, 또는 새생명을 의미합니다) 그 선물은 오직 성령님을 통해서만 유효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리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는 우리에게 없는 어떤 “초월(beyond)의 것”을 취하셔서, 우리 각자의 “속에(within)” 넣어 주신 것입니다. “그 초월의 것 (the beyond)”이 우리 “속에” 거하면, 우리는 그 즉시 “그 위”로 올리워집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시는 영역으로 들어 올려지는 것입니다. (요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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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묵상글을 읽으면서 주일 산상수훈 설교말씀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어 왔다. 심령의 가난함. 빛과 소금. 바리새인보다 더 큰 의, 모두 성령께서 내안에 오시면 이루실 약속들. 하나님의 나라가 내 속에 이루어지는 모든 시작이 심령의 가난, 영적 갈급임을 깨닫는다. 조금이라도 내가 할만하면 받을 수 없는, 도무지 나로서는 절망인 심령의 가난만이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내딛는 첫걸음이며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임하는 통로임을...

 

그 심령의 가난이 바닥을 칠 때 열리는 문으로 들어오시는 성령님.  내 안에 들어 오신 그 성령님이 나를 빛되게 하시고 소금되게 하신다는 것이고 그 성령님이 내게 순종할 의지를 주셔서  바리새인보다 더 큰 의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이 되신다는 거다.  다만 율법의 문구만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문구 주변에 서려있는 행간, 그 율법 정신 전체를 심령에 부어 주심으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더 큰 의를 행할 수 있게 하신다는 거...

 

가난이 부요함이 되는 영적 반전의 시퀀스를 주일과 오늘 두번이나 자세히 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자상한 인도하심에 감사하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한성령님 안에서 하나가 됨을 느끼는 아침, 매일 가난하고 매일 성령님으로 부요하기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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