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하다 받은 은혜

by 김민수 posted Apr 2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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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써본 글로 구역 예배 때 읽었는데 좋은 글이라고 격려들을 해주셔서 올려봅니다.

                                  청소하다가 받은 은혜 하나
                               2008. 3. 25 샬롯츠빌에서 김민수

안식일 다음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 걸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인사하셨다. (요 20:19)

미국에 올 때 최소한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하나는 아내와 아이들 운전기사 일을 충실히 하는 것과 설거지와 집안 청소를 맡아 잘하는 것이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나로서는 가족 틈을 비집고 그 안에 들어가려는 필사적인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동네 지리와 교통 규칙들을 좀 익히고 차 핸들을 잡을 수 있을 정도가 되자 다음으로 집안 대청소를 시작했다.
창고, 주방의 선반들, 벽장 등 집안 공간 구석구석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물건들을 다 끌어내어 닦을 건 닦고, 수리할 건 수리하고, 버릴 건 버리고 한 후, 다시 분류하여 잘 정리해서 각 공간에 집어넣는 일을 하는 데 매일 여기에 매달려 2주 이상이 걸렸다.

‘혼돈에서 질서로’.
한국에서부터 집안 대청소를 몇 번 하는 동안 이 과정의 묘미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많은 물건들을 끌어내어 거실 바닥에 늘어놓고 보면 이걸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우선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같은 종류의 물건들이 여기 저기에서 끝날 만하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한다. 그러나 한참동안을 쉬엄쉬엄 살핀 후에 대강 분류의 틀을 세우고 그 틀에 따라 널려있는 물건들을 다시 하나하나 집어넣을 때부터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처음 세운 틀을 조금씩 수정하기도 한다. 모든 물건들을 새롭게 정리하여 가지런히 집어넣고 보면 참 보기가 좋다. 질서의 아름다움, 아니 질서 창조의 기쁨같은 것이 느껴진다.

필요한 도구인데도 어디 구석 깊숙이 쳐박혀 있어 모르고 있던 것을 꺼내 잘 보이는 곳에 놓고, 먼지나 때가 너무 심하게 묻어 사용하기 힘든 것들을 깨끗이 닦아 거의 새 것처럼 만들고, 손잡이 나사가 헐렁하다든가 하는 작은 문제들로 팽겨쳐진 살림도구들을 고쳐 놓고, 잘못 설정된 것들을 바로 잡아 놓으면 다시 사용하고 싶은 맘이 들게 된다.
이런 일을 한참 하고 있는 데 아내가 옆에서 “부활하는 것들이 많네!”하고 칭찬을 해 준다.

순간 ‘그렇구나 존재들의 부활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인간들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가치없는 상태’에서 ‘가치있는 상태’로 바뀌는 것. 그것이 우리 인간들이 소망하는 부활이 아닐까. 죽었다가 다시 산다는 것. ‘나의 가치없음을 알고’ ‘가치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부활이 아닐까.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느낄 때 그것은 몸이 살아있어도 죽음과 같은 것이리라.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한 사람을 잃었을 때, 자기 스스로가 도저히 맘에 들지 않아 자신에게 절망할 때, 사회적으로 크게 비난받게 되어 더 이상 얼굴을 들고 거리를 다닐 용기가 나지 않을 때, 꿈꾸던 일이 좌절되고 마지막 믿었던 희망마저 무너져 이제는 이땅에 아무런 미련이 없게 되었을 때, 그것은 ‘죽음’과 같은 것이리라. 그리고 이런 죽음은 스스로를 이길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누가, 또는 무엇이 우리를 이런 죽음에서 건져내 줄 수 있을까?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누가 나를 ‘가치있다’고 ‘살아나라’고 말할 수 있는가?

굳게 닫힌 문을 뚫고 부활하신 예수가 우리 가운데 들어와 말씀하신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요한복음 20:19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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